
한국에 중앙아시아는 어떤 존재인가? 지난 200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된 자원 확보를 위한 국제 경쟁에서 중앙아시아는 한국의 주요 협력대상으로 여겨져 왔다. 다수의 한국 기업이 앞다투어 중앙아시아에 진출하였고 주로 경제 분야를 중심으로 다양한 영역에서 교류가 이어졌다. 약 30만 명 이상의 고려인이 거주하고 있다는 점도 우리에게 이 지역을 친근하게 느끼게 해 준 요인이었다. 과거 한국 정부는 때로는 러시아를 포함하는 북방정책의 일부로, 때로는 이 지역만을 별개로 하는 국가 차원의 협력 전략을 수립하고 시행했다. 그리고 이를 수행하는 데는 당시 분산화된 집행 기관, 부족한 자원 등 여러 대내외적 한계에 부딪혀 원하는 성과를 이루어 내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 막 새 정부가 들어선 지금, 우리는 중앙아시아에 대해 어떤 정책을 펴나가야 할 것인가? 이는 먼저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대내외 환경을 재평가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먼저, 중앙아시아 내부적으로 공통의 경제적·사회적 지향점과 협력 필요성이 부각되면서 5개국 간 결속이 강화되고 있다. 오랜 기간 협력의 발목을 잡았던 수자원·국경 문제는 대부분 합의에 이르렀으며 수년간 계속된 정상 회의를 통해 공통의 문제에 대해 협력하고 있다. 최근 중앙아 5개국(C5) 정상과 미국, EU, 러시아, 중국 등 각국(1)의 정상이 참여하는 ‘C5+1’ 형태의 회담은 지역 현안을 논의하는 주요 형태로 자리 잡았는데,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함께 협력할 때 외부로부터 얻는 이익이 커진다는 것을 인식하면서부터이다. 공통의 협력 분야로는 교통·물류, 전력, 제조업·산업, 디지털 분야 등이 꼽힌다. 또한 이러한 협력과는 별개로 우즈베키스탄이나 카자흐스탄의 경우, 인공지능(AI)이나 혁신산업 부문의 발전에 매우 적극적이다. 실제로 카자흐스탄은 최근 중앙아시아 최초로 데이터센터와 슈퍼컴퓨터를 도입하고 대형언어모델(LLM) 개발에도 나선 상황이다. 반면 키르기스스탄이나 타지키스탄의 경우, 최근의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다른 국가들에 비해 지속적인 발전의 모멘텀을 찾지 못하고 있으며 여전히 대외송금에 의존적인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중앙아시아를 둘러싼 최근의 외부 환경 변화도 역내의 다양한 역학 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2022년 2월의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이 지역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당시 러시아에서 철수한 서방 기업들은 주로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등으로 이전하였으며 현지에 공장을 건설하는 등 지역의 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또한, 당시 러시아에서 징집을 피해 이주한 러시아인들은 주로 IT 분야의 전문가들로, 중앙아시아 정부가 자국에서 IT 산업 발전을 추진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또한, 러시아에 대한 물류 제재로 인해, 유라시아 대륙에서 러시아 우회로에 대한 수요가 커지면서, 중국에서 유럽을 연결하는 대안루트로써 중앙아시아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최근 ‘중국-키르기스스탄-우즈베키스탄(CKU) 철도’나 ‘카스피해 횡단 철도’,‘중국-중앙아시아-이란 철도’ 등의 건설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진 것은 모두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에너지 수입에서 EU가 탈러시아 정책을 펼치면서 중앙아시아로부터의 수입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지역으로서는 긍정적인 요인이다. 전반적으로 국제정세에서 중앙아시아의 중요성이 확대 및 재구성되는 시점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한국의 대(對)중앙아시아 정책은 단순히 기존 정책의 변용이나 확대로는 부족하며 보다 더 정교하게 추진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정책으로는 지정학적 역학 관계와 장기적인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잠재력을 충분히 활용하기 어려우며 정책의 깊이를 다층화하고 미래지향적 협력 모델을 구축하는 데 힘써야 한다. 먼저, 기존의 에너지 개발에 치중했던 협력 모델을 전환해 AI, 디지털 기술, 친환경 기술, 재생에너지 등 고부가가치 산업에 대한 공동 협력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단순히 완제품을 수출하는 것을 넘어서, 현지 기업과 함께 투자하고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내는 전략이 필요하다. 최근 UAE는 카자흐스탄에 슈퍼컴퓨터 도입을 지원하면서 이를 활용한 자국 기업과의 협력 방안을 모색하고 있으며 우즈베키스탄에서 전기자동차를 조립하는 중국 기업은 로컬 부품 업체들과의 상생을 추진하고 있다. 해당 국가의 필요에 의해 그들과 함께 투자하는 사업은 주위 여건에 쉽게 흔들리지 않으며 지속가능성이 높다. 주변 산업생태계가 조성되어 협력 역량은 더욱 강화될 것이며 확대되는 시장에 대한 지배력도 공고히 할 수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각국의 경제력 격차나 수요에 대한 차이가 고려되어야 한다. 키르기스스탄이나 타지키스탄의 경우, 실질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사업은 그 규모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중앙아시아 공통의 프로젝트로 추진되는 물류·운송이나 전력, 인프라 개발 등의 분야에서는 관련 기업에 새로운 기회의 장이 열릴 가능성이 높다. 늘어나는 인구와 산업용 수요에 따라 전력 수요는 증가하고 기존 시설은 노후화되면서 전력 공급 문제는 정부의 최우선 과제 중의 하나가 되었다. 중앙아시아 내부적으로 계절별로 남거나 부족한 전력을 상호 공급하는 구조가 자리 잡고 있지만 신규 발전소 건설이나 노후 발전소 현대화 등의 과제는 향후 수년간 지역 내의 주요 이슈가 될 것이다. 또한, 이제 개발이 본격화되는 신규 물류·운송 프로젝트와 인프라 개발 프로젝트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최근 한국의 한 건설사가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인프라 건설 프로젝트를 수주한 것은 좋은 사례로 볼 수 있다.
또한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의 경우, 경제적인 관점보다는 개발협력(ODA)을 연계한 사업 개발에 힘써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이 지역에 대한 개발협력 사업은 단순 프로젝트 지원이나 유학생 지원 등의 사업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지역 사회나 경제에 장기적인 영향을 주는 사업보다는 일회성 사업이 주로 추진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작은 규모의 사업이 산재되어 있고 실제로 사업을 집행하는 수행 주체가 지나치게 다양해 일관된 정책효과를 내기 어려운 구조이다. 이를 개선해 일관된 분야와 사업에 재원을 집중하고 이와 연관되어 파급효과를 낼 수 있는 적정 규모의 사업을 창출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위와 같은 전략을 실행할 집행기구로서 기존의 ‘북방경제협력위원회’와 같은 대통령 직속의 ‘유라시아전략위원회(가칭)’의 설치가 필요하다. 이는 중앙아시아뿐만 아니라, 향후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이 이루어질 경우, 유라시아 지역 전체에 대한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대처를 위한 목적의 기구이다. 중앙아시아 지역에 러시아를 포함한 중국, 미국 등 글로벌 강대국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유라시아 지역 전체에 대한 균형적인 시각과 조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러시아와의 관계가 정상화되기 이전까지는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정부 차원의 정책을 주도하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정부의 정책이 부처별로 분산되어 있으며 다국가 간 정책을 추진할 경우, 그 추동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통령 직속 기구 설치를 통해 주요 사안에 대한 실질적인 효과를 이끌어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중앙아시아 지역을 끌어안기 위한 각국의 노력은 계속 강화되고 있다. 중국의 진출과 EU의 에너지 협력은 가시적으로 다가오고 있으며, 러시아와 미국에게는 전략적 요충지역으로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글로벌시장에서 중앙아시아의 위상이 올라가고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기존의 다소 안일했던 협력 방식에서 벗어나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상생할 수 있고 실효성을 가진 전략의 수립과 실행에 힘써야 할 것이다.
* 이 글의 내용은 아시아연구소나 서울대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자 소개
박지원(jiwonpark@kotra.or.kr)
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전문위원, 한·러대화(KRD) 경제분과 전문위원
전) 한국외국어대학교 연구교수, 대통령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전문위원
< 주요 저서와 논문 >
『포스트코로나 시대 한러 혁신 스타트업 협력 방안』(공저), (도서출판 알음, 2022).
“중앙아시아 역내 협력 강화의 경제적 배경과 추진 방향.” 『슬라브연구』 41(1), 2025.
“이주 러시아 난민의 경제적 영향: 중앙아시아의 사례 연구.” 『아시아연구』 14(2), 2024.
최신관련자료
Denisov-Blanch, Yegor (2025). “Kazakhstan: Central Asia’s AI Powerhouse.” The Astana Times, May 21. (accessed 2025, July 18)
Kwan, Sergey (2025). “Tajikistan Seeks to Join China-Kyrgyzstan-Uzbekistan Railway Project.” The Times of Central Asia, July 8. (accessed 2025, July 18)
Muratbekova, Albina (2024).“Key Insights from the Sixth Consultative Meeting in Astana.”Eurasian Research Institute. (accessed 2025, July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