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시아의 힙합/랩 음악에 대한 소고

이 글은 동북아시아 각 국가별 힙합/랩 음악의 흐름과 전개 과정을 간략히 살피고, 동북아시아 힙합/랩의 일반적인 특징을 개괄하고자 한다. 미국에서 시작된 힙합/랩이 지난 30~40여 년간 일본, 한국, 대만, (홍콩을 포함한) 중국에 어떻게 유입, 전유되고 언더그라운드 씬에서 주류 대중음악으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본다. 변화하는 대중음악 산업과 시장의 흐름에서 각 나라의 힙합/랩은 차이만큼 유사한 경향 역시 발견된다. 아울러 힙합/랩 음악 가사의 유형을 범주화하고 몇 가지 간략한 동북아시아 리릭스(lyrics)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양재영(서울과학기술대학교)
출처: ChatGPT 생성 이미지

 

들어가며

음악이자 문화로서 힙합의 역사는 반세기에 이른다. 1970년대 중후반 뉴욕시 브롱스 등 대도시 게토의 클럽과 거리를 주 무대로 아프리칸 아메리칸 그리고 히스패닉 청년들을 중심으로 시작한 힙합은 엠씨잉(MCing)과 디제잉(DJing) 그리고 브레이크댄스, 그래피티, 스트리트 패션이 어우러지며 일종의 종합문화적 성격을 애초부터 지녔다(양재영, 2001). 그중에서도 래퍼라고 흔히 불리는 엠씨와 디제이의 퍼포먼스가 조합된 음악적 요소는 오늘날 힙합이라 하면 그저 음악만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막대한 비중을 차지한다.

턴테이블, 믹서, 샘플러가 구축하는 쿨하고 단단한 비트의 사운드와 이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랩 그리고 랩에 담긴 가사와 라임은, 음악으로서 힙합/랩의 가장 큰 매력이자 힙합/랩을 하나의 변별된 음악 장르로 규정하게 한다. 1980년대 후반부터 힙합/랩은 미국 대중음악 시장의 주류로 부상했고, 1990년대 이후에는 국제적인 인지도와 인기를 얻게 되었다. 대부분의 영미권 대중음악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미국의 힙합/랩 음악 중에 국제적인 히트곡들이 나오고 미국 힙합/랩 아티스트들이 글로벌 스타가 되는 현상은, 비영미권 국가에서 자생적으로 힙합/랩 음악이 태동하고 성장하는 과정과 동전의 양면처럼 맞물려 왔다. 물론 비영미권에서 힙합/랩의 음악적 지형이 형성되고 전개되는 과정은 각 나라마다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서는 이러한 국제적인 힙합/랩 음악의 흐름과 양상을 동북아시아 국가들, 특히 한국, 일본, 중화권(홍콩을 포함한 중국, 대만)에 국한해 살펴보기로 한다. 아울러 힙합/랩의 정수라 할 수 있는 래퍼들의 가사 혹은 리릭스(lyrics)를 몇 가지 사례와 함께 범주화해 보겠다.

동북아시아 힙합/랩의 전개

일본의 힙합/랩

자본주의 음악산업과 대중음악은 영미권에서 19세기 후반에 태동했는데, 일본은 비서구 국가 중에 가장 이른 시기인 20세기 초반에 이미 근대적인 대중음악이 생산되고 시장이 형성되었다. 영미권 대중음악 다른 장르들 대부분이 그러했듯이, 동아시아 국가 중에 힙합/랩을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국가 역시 일본이었다. 미국에서 힙합/랩이 아직은 언더그라운드에 머물던 1980년대 초반에 슈거힐 갱(Sugarhill Gang)과 일렉트로 훵크 사운드가 일본에 이미 알려졌다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그리고 힙합이 미국에서 주류 대중음악으로 부상하던 1980년대 중반 무렵에 힙합의 음악적 요소와 작법을 직접적으로 받아들인 프레지던트 비피엠(President BPM)과 같은 아티스트들이 등장했다.

일본 언더그라운드 힙합/랩 씬은 때로는 브레이크댄스 씬과 문화적으로 연결되며 성장했고, 1990년대에는 힙합/랩의 비트와 랩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드래곤 애쉬(Dragon Ash) 같은 아티스트들이 등장해 히트곡을 낳으며 주류 대중음악 시장에 완전히 자리 잡았다. 언더그라운드 성향의 일본 힙합/랩은, 킹기드라(KGDR)나 누자베스(Nujabes)의 경우에서 보듯이, 이스트코스트 힙합, 하드코어 힙합부터 재즈 힙합까지 미국의 다양한 힙합/랩 하위장르들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이를 지역적으로 전유하는 성향이 강한 편이다. 주류 대중음악 시장에서는 최근의 크리피 너츠(Creepy Nuts)처럼 일본 대중음악 특유의 멜로디와 싱잉 보컬이 훅의 역할을 하면서 랩이 결합한 곡들이 지속적으로 대중적인 지지를 받아왔다.

한국의 힙합/랩

적어도 랩에만 국한한다면 한국에 힙합/랩의 영향을 받은 가요가 출현한 것은 1980년대 후반부터이다. 그리고 1990년대 초중반에, 라임과 랩 그리고 비트를 나름 적극적으로 수용한 ‘랩댄스’ 음악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끈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현진영 등에 힘입어 힙합/랩은 10대 청소년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음악이 되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한국 힙합/랩은 1990년대 후반 소위 ‘PC통신’의 흑인음악/힙합 동호회들을 기반으로 형성된 언더그라운드 씬에서 각종 크루와 레이블이 결성되고 음악 작업과 앨범 발매가 진행되면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2000년대 이후 리쌍, 드렁큰 타이거, 에픽하이 등이 주류 대중음악 시장과 미디어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힙합은 한국 대중음악의 중요한 흐름 중 하나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2012년부터 채널 엠넷에서 방송된 힙합/랩 서바이벌 콘텐츠 <쇼 미 더 머니(Show Me The Money)>를 기폭제로 힙합/랩은 주류 중의 주류 대중음악으로 격상되었다. 주류와 비주류를 망라한 다양한 아티스트와 프로듀서, 크루와 레이블들 그리고 아이돌을 비롯한 ‘비힙합’ 아티스트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출연진의 퍼포먼스와 활약이 화제를 모으고 서바이벌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제작된 다양한 음악들이 큰 인기를 끌면서 힙합/랩은 청(소)년 층이 가장 사랑하는 한국의 대중음악 중 하나가 되었다. 물론 2020년대 이후 케이팝이 청(소)년 수요자를 더욱 더 잠식하는 사이, 한국 힙합/랩 자체의 대중성이나 사회문화적 위상은 점차적으로 약해지고 있다고 평가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2026년 12번째 시즌이 방영된 <쇼 미 더 머니 12>
출처: 엠넷

 

중화권의 힙합/랩

대만과 홍콩의 힙합/랩은 유입, 전유되는 방식이 비록 한국과 같지는 않지만, 역시나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에 미국 힙합 비트의 영향과 자국어 랩이 결합한 음악들이 생산되면서 시작되었다.

대만의 경우 할렘 유(Harlem Yu)가 랩을 적극 활용한 만도팝(Mandopop)을 1980년대 후반에 처음 소개했고, 특히 미국 교포 트리오 엘에이보이즈(LA Boyz)의 큰 인기로 1990년대 초에 힙합/랩은 주류 대중음악 시장에 안착했고 언더그라운드 씬도 본격적으로 형성되었다. 엠씨 핫독(MC HotDog)의 사회의식적인 가사, 소프트 리파(Soft Lipa)의 재즈힙합과 더불어 자국어/자국 문화와 결합된 음악적인 실험은 대만 언더그라운드 힙합의 분명한 정체성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2018년부터 방영한 힙합 서바이벌 방송 콘텐츠 <더 래퍼스(The Rappers 大嘻哈時代)>는 대만에서 힙합/랩 음악이 주류 중의 주류가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홍콩은 1990년대 초반에 시티 사이드 크루(City Side Crew) 같은 언더그라운드 아티스트가 본격적으로 힙합/랩의 시작을 알렸고, 한편으로 주류 대중음악 시장의 칸토팝(Cantopop) 스타들이 랩을 가미한 히트곡들을 내놓으며 힙합/랩은 대중성을 획득했다. 홍콩의 중국반환이 1997년에 이루어졌으나, 어찌 되었든 ‘일국양제(一國兩制)’가 형식적으로라도 지속되는 만큼, 힙합/랩의 성장과 진화는 중국 본토와는 다른 결로 진행되어 왔다. 특히 홍콩 힙합/랩의 파이오니어로 꼽히는 LMF(Lazy MuthaFuckaz) 그리고 미국의 서바이벌 방송 프로그램에서 흑인 래퍼들을 ‘압살’했던 미국교포 실력파 엠씨 진(Jin)의 홍콩/중국 활동은 2010년대 이후 홍콩 힙합/랩의 지속적인 성장과 인기의 초석을 마련했다.

중국은 다른 동북아시아 국가들과 사회경제적 시스템이 다른 만큼 힙합/랩이 진화하고 전개되어 온 과정이 조금은 상이할 수 있을 것이다. 서구 자본주의 문화상품에 대한 검열이 여전히 엄격하던 1990년대에 이미 힙합/랩은 음성적인 형태로나마 중국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 당시 대부분의 서구 대중음악이 그러했듯이, 검열 후 폐기되어 암시장으로 흘러들어간 미국 힙합 ‘다커우(打口)’ CD와 테이프는 대도시 청년들이 힙합/랩을 처음으로 인지하고 수용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리고 자본주의적 문화산업의 성장이 본격화되는 2000년대 이후 중국에서는 서구화된 자국 대중음악의 질적, 양적 팽창이 폭발적으로 진행되는데, 힙합/랩 역시 예외일 수 없었다. 온라인이 언더그라운드 힙합의 성장을 추동한 후에 팻 섀디(Fat Shaddy), 하이어 브라더스(Higher Brothers) 등은 전국구 스타가 되었다. 물론 2017년에 방영되기 시작한 TV 서바이벌 프로그램 <더 랩 오브 차이나(The Rap of China)>의 상업적 성공은 힙합/랩의 인기를 가속화했다. 하지만 이러한 인기 뒤켠에는 힙합/랩의 가사에 대한 엄격한 사회주의적 검열이 여전히 병행되고 있다.

동북아시아 힙합/랩의 경향

미국에서 시작한 힙합/랩이 다른 대륙과 국가에서 음악적으로 그리고 산업적으로 정착하고 발전해 온 과정은 그 차이만큼 공통점 역시 발견된다. 이 글에서 다루는 동북아시아 국가들 역시 마찬가지다. 동북아시아에서 언더그라운드 힙합 씬이 형성되고 주류 대중음악 시장에서 힙합/랩이 성공을 거두는 계기, 방식 그리고 전개 과정은 전술했듯이 다양할 수밖에 없지만, 한편으로 유사성도 존재한다.

첫째, 모든 동북아시아 국가에서 언더그라운드 힙합/랩 씬의 활동은 주류 대중음악시장에서의 힙합/랩의 성공과 항상 병행 혹은 공존해 왔다. 한국이나 중국처럼 온라인 기반으로 그리고 일본처럼 지역 클럽가 중심으로 형성된 언더그라운드 씬은 미국 본토에서 유입된 비트 위에 다양한 모국어 랩과 가사, 토착 음악을 녹여내는 실험을 통해 음악적 진화를 끌고 나갔으며, 이러한 실천은 자연스레 주류 대중음악 시장에서의 히트곡과 스타들을 낳는 자양분 역할을 오랫동안 해왔다.

둘째, 힙합/랩은 다른 어느 장르보다도 디아스포라(diaspora) 혹은 초국적(transnational) 네트워크가 초기의 음악적 정착과 전유과정에서 결정적인 요소가 되었다. 특히 힙합/랩이 아직 낯설었던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에 미국 힙합으로 무장한 대만의 엘에이보이즈, 한국의 드렁큰 타이거 등 수많은 동북아시아 교포출신 아티스트들이 모국의 대중음악 시장에 진출해 활동하고 성공을 이루며 힙합/랩의 대중화를 주도한 것은 그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셋째, 21세기 특히 2010년대 이후 음악 산업과 비즈니스 동학은 대중음악의 직접적인 판매를 기반으로 하는 1차 시장에서 미디어 중심의 2차 시장으로 전면적인 전환이 이루어졌고, 이는 동북아시아 힙합/랩의 현재 지형에도 직접적으로 나타난다. 대중음악의 유통과 소비는 더 이상 음반이나 음원과 같은 음악의 직접적인 구매를 중심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가령 한국에서 트로트 장르가 새로운 ‘메가 히트’곡 하나 없이도 그저 <미스터트롯>, <미스트로트>라는 서바이벌 방송콘텐츠의 연이은 성공으로 2020년대에 부활한 것이 그 경우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한국의 <쇼 미 더 머니>. 대만의 <더 래퍼스>, 중국의 <더 랩 오브 차이나> 같은 티비 서바이벌 힙합 콘텐츠는 그 자체로 히트곡을 만들고 스타 아티스트를 만들고 수많은 온라인 밈을 만들어내며 힙합/랩 신드롬을 일으켰다. 여전히 1차 시장이 힘을 갖고 있는 일본을 제외한 나머지 동북아시아 국가에서는 이렇게 각종 미디어콘텐츠, 온라인 플랫폼, SNS가 힙합/랩을 청년들을 위한 주류 중의 주류 대중음악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동북아시아 힙합/랩의 리릭스 사례

힙합/랩은 쿨한 비트, 창의적인 샘플링과 더불어, 비트를 타고 넘나드는 래퍼들의 플로우와 라임 그리고 사설(辭說)에 가까운 가사가 최고의 매력과 흥미를 선사하는 음악이다. 그 어떤 음악 장르보다 많은 가사를 구어적으로 풀어내고 발화하는 방식이 강조되는 음악인만큼, 힙합/랩 수용자들은 무엇보다도 가사에 자연스레 가장 큰 관심을 갖게 된다. 힙합/랩 수용자들이 가사를 굳이 리릭스(lyrics)라 별칭하고 멋진 가사를 쓰는 엠씨들을 단순한 래퍼가 아니라 리릭시스트(lyricist)라 칭송하는 것은, 그만큼 힙합/랩에서 가사가 차지하는 막대한 비중과 중요성을 보여준다.

힙합/랩의 가사가 담아내는 주제와 내용은 실로 방대한 스펙트럼을 이룬다. 사실 각 대륙, 국가, 지역의 사회문화적 상황과 정치경제적 현실의 다양성 혹은 이질성은 말할 것도 없고 사람들의 삶도 각기 다를 것이고, 따라서 이를 반영하고 표현하는 가사도 너무도 다양할 것이다. 이는 동북아시아 국가들의 힙합/랩에도 예외일 수 없다. 이러한 힙합/랩의 다양한 가사들을 굳이 범주화 해보자면 크게 세 가지 정도로 분류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각각의 범주 하에 몇몇 동북아시아 힙합/랩 음악의 가사들을 사례로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자. (힙합/랩 가사의 특징을 각 국가별로 변별해서 설명하는 것은 그 자체로 무모하고 소모적이기에 이 글에서는 시도조차 하지 않음을 미리 밝혀둔다.)  

사회의식적/정치적 의미

힙합/랩은 방대한 가사와 그에 대한 발화를 정수로 삼는 음악이다. 더욱이 대도시 슬럼가의 거리와 클럽에서 마이너리티(minority) 청년들의 언더그라운드 문화이자 음악으로 시작되었기에, 사회의식적이고 정치적인 가사를 담는 혹은 담아야 하는 음악으로 오랫동안 그 정체성이 규정되어 왔다. 이는 동북아시아의 힙합/랩에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힙합/랩을 비롯한 대중음악 장르들은 사회의 변화와 시간의 흐름에 반응하며 ‘살아 움직이는 문화(living culture)’이기에 이러한 정체성에 고정되고 집착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의식적이고 사회비판적인 가사로 무장한 힙합 리릭시스트들은 힙합/랩이 태동할 때부터 지금까지 언제 어디에서나 존재해 왔고 그들의 음악적 실천은 늘 그 사회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왔다.

가령 대만 힙합/랩의 파이오니어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래퍼 대지(大支, Dwagie)는 〈대만지성(台灣Song)〉(2002)에서 대만인들의 정체성과 문화를 강조하고 외부의 억압 속에서도 대만인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어야 한다고 강하게 외치며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는데, 컨셔스(conscious) 힙합/랩이 어떤 사회정치적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였다.

大支(Dwagie) – 台灣SONG

일상성, 자아 그리고 쿨과 힙

물론 사회의식적인 힙합/랩의 생산은 201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감소되어 왔다. 이는 주류 대중음악 시장의 영역뿐 아니라 언더그라운드 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힙합/랩을 상징하는 정서인 ‘리얼(real)함’과 ‘쿨(cool)’함이 더 이상 사회정치적인 발화일 필요가 없는 시대에, 힙합/랩의 미학은 개인 혹은 자아, 일상에 보다 집중하게 되고 심지어 자본주의 시장의 논리와 궤를 같이 하는 것도 다반사다. 스웩(swag), 플렉스(flex), 기믹(gimmick)과 같은 태도 혹은 기술적 방식이 이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활용 혹은 적용된다.

일본 오사카 언더그라운드 씬의 재일교포 3세 래퍼 케이온(Kay-on)은 <300 Bars Freestyle>(2025)에서 본인이 처한 현실에 대한 자괴감과 부정보다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의 자신감과 자부심을 당당히 드러내는 선택을 한다(정창훈, 2026).

…거칠고 날카로운 톱보이(Top boy), 나를 말하는 거야 / 사람들은 나를 ‘춍’이라 불러 / ‘이 나 라에서 꺼져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 진짜로 떠났다면 지금쯤 항공 마일리지로 여행을 다닐 판 이지 / 쫑알쫑알 시끄러운 입은 틀어막아 버려 Shut the fuck up / 힘과 독, 고통과 기쁨이 내 DNA 안에 있어 / 싸움을 피하진 않지만 사실 싸움은 정말 싫어, 내 DNA 속 이야기 / 힙합은 내 DNA에 새겨져 있어… (원문 번역)

Kay-on – 300 Bars Freestyle

이러한 태도는 주류 대중음악시장의 힙합/랩에서 보다 명확해진다. <더 랩 오브 차이나>에 출현해 화제가 되면서, 특히 한국 힙합 수용자들로부터 표절 의혹으로 비난받았던 중국 래퍼 갈리(Gali)는 <70%>(2020)에서 때로는 반어적 표현까지 구사하며 당당하고 떳떳하게 자기과시를 한다.

…그는 내가 표절했대 / 그들은 내가 표절했대 / 그들은 내가 남의 플로우를 베꼈대 / 내 랩이 남을 따라 하는 거래 / 미안해, 이렇게 오래 활동해 놓고도 / 내가 상하이를 대표한다는 걸 너한테 각인시키지 못해서 / 난 QQ뮤직, 망이윈(網易雲)부터 비리비리(bilibili)까지 줄곧 베꼈지 / 맞아, 나 표절했어 / 무두 몬타나(霧都Montana), 그들한테 들켜버렸네 / 그들이 맞다고 생각하면 다른 건 상관없어 / 목표는 메인 배너 자리를 차지하는 것뿐 / 댓글창은 아주 난리가 났네, 어쩜 그렇게 대단들 하실까… (원문 번역)

Gali – 70%

시적 강박 혹은 라임과 플로우, 언어적 표현

세상에 대한 자기 생각을 거침없이 표현하든 때로는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을 과시하듯 내뱉든, 결국 힙합/랩의 가사 혹은 리릭스는 일반적인 노래 가사들보다 길고 방대한 서사가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 가사를 쓰는 과정은 라임과 플로우, 메타포가 조합된 일종의 문학적 표현을 구축하는 노력이 되는 경우가 많다. 어떤 래퍼들은 때로는 문학적, 시적 강박증에 가까울 정도로 정교하고 수려하고 유려한 글을 써내려간다. 가령 한국 힙합/랩 1세대 아티스트인 가리온이나 피타입 같은 이들은 영어를 쓰지 않고 오로지 한글로 근사한 라임의 가사들을 완성하기 위해 노력했었다. 사실 정교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라임의 가사는 좋은 힙합/랩 음악의 출발점이 된다. 특히 미국에서 들어온 힙합/랩을 어떻게 자신의 모국어로 근사한 라임을 구성해 낼지 여러 동북아시아 래퍼들이 고민과 노력을 해왔다. 또 다른 한국 힙합/랩 1세대 래퍼 버벌진트는 그런 맥락에서 또 한 명의 파이오니어로 꼽히는데, 그의 2001년 곡 <Overclass>의 일부분을 살펴보자(괄호 표기는 라임을 강조하기 위함).

정말 이 바닥은 [요만큼의 비약도]없이 열 중의 아[홉 다 쓰레기라고] / 거침없이 말하고 [다니는데], 무사안일을 빼면 시체인 원로[파의 눈에] / 이제 시작에 불과한 어[린 MC]가 무[지 괘씸]하게 비쳐[지겠지] /But you must [respect me] 왠만한 [기대치는] / 너무 쉽게 뛰어넘어 버리[니 얘기는] / 이미 결론이 나버[렸잖아] / 지들이 rap 좀 하는 실[력자란] [커다란] 착각을 / (버리고) 우리의 교과서(적인 곡)들을 [벗 삼아] / 좀 [더 사람]다운 rap 인생을 살아보[던지], / 아니면 역사의 뒤안길로 흙[먼지]처럼 / 사라지는 길 뿐이지 [뻔하지] / now I ask, “on which road do you [wanna be?]”

버벌진트 – Overclass

나가며

이상과 같이 동북아시아의 힙합/랩 음악을 살펴보았다. 한 국가의 힙합/랩을 다루기도 어려운 한정된 분량에 한국, 일본, 중화권의 힙합/랩을 포괄해서 체계적으로 상세히 다루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각 나라별 힙합/랩 음악의 전개 과정을 아주 개괄적으로 살피고 힙합/랩 음악의 정수라 할 수 있는 가사를 범주화해서 몇 가지 사례를 간략히 살펴보았다. 힙합 비트와 그 비트를 넘나드는 랩은 그 자체로 너무도 매력적이기에 전 세계의 많은 청년들을 매료시켜 왔는데, 한국, 일본, 중화권의 힙합/랩도 마찬가지였다. 각 국가의 사회문화적 맥락, 정치적 상황, 경제적 시스템은 다르겠지만, 항시 힙합/랩은 청년들의 삶과 문화에 스며들었고 나아가 주류 대중음악의 지위에까지 올라서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이 글에서 따로 다루지는 못했지만 힙합은 음악이면서 문화이기도 하다. 전술한 스웩, 플렉스, 기믹과 같은 단어가 표현하는 문화적 태도 혹은 분위기뿐 아니라, 브레이크댄스, 그래피티, 스트리트 패션까지 수많은 문화적 표현물 혹은 문화상품들이 음악과 엉켜있는 게 힙합이기도 하다. 그래서 조금 더 ‘종합문화’적인 맥락에서 동북아시아의 힙합을 살피고 비교할 수 있는 기회가 조만간 있기를 바란다.

저자 소개

양재영(afronaught@gmail.com)
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교와 성공회대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 서울대학교 인류학과(학사 및 석사과정)와 뉴욕시립대학교 인류학과(박사과정)에서 공부하였고, 현재 한국대중음악학회 총무이사를 맡고 있다. 주로 힙합/랩을 비롯한 대중음악과 음악문화 그리고 문화기획에 관심이 많고, 관련 저서(공저 포함)를 다수 출판하였다.

참고문헌

참고문헌

양재영. 2001. 『힙합 커넥션: 비트, 라임 그리고 문화』. 서울: 한나래

정창훈. 2026. “‘연결적 주변성(Connective Marginalities)’의 문화정치학: 글로벌 힙합 연구의 재구성을 위한 시론.” 동방학지 215집, 255-2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