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Ahmed akacha (Pexels)
2026년은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이 채택된 지 75주년이 되는 해이다. 1967년 「난민의 지위에 관한 의정서」가 채택된 지도 59년이 되었다. 그동안 세계는 변하였고, 난민협약과 의정서에 모두 담지 못한 새롭고 복잡한 난제들이 발생하였다. 전 세계 강제이주민 1억 2천만 명을 넘고 섰고, 장기화된 국제분쟁, 난민 수용 비용과 부담을 둘러싼 국가 간 분쟁, 보호주의와 배제의 확산 등으로 지난 75년간 쌓아온 난민보호 체계가 심각한 위협을 맞고 있다. 난민협약 75주년을 맞아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난민협약이 여전히 유효한가가 아니라, 변화된 현실 속에서 협약의 정신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이다.
난민협약은 본래 ‘난민인정에 관한 협약’이 아니라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Convention Relating to the Status of Refugees)’이다. 협약이 정한 보호책임은 단순히 누가 난민인지를 결정하는 절차에 그치지 않는다. 국제적 보호가 필요한 사람에게 법적 지위와 권리를 보장하고, 인간으로서 존엄한 삶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협약의 본래 목적이다. 난민보호는 ‘누구를 얼마나 난민으로 인정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넘어, 인정된 난민과 국제적 보호가 필요한 사람을 실질적으로 어떻게 보호하고 함께 살아갈 것인가라는 문제로 확장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1992년 협약 가입 이후 2012년 아시아 최초로 독립된 난민법을 제정하였다. 난민심사절차, 난민 처우, 사회보장 등을 별도의 법률로 규정했다는 점은 중요한 제도적 성과이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난민 논의는 대부분 ‘난민을 얼마나 인정할 것인가’, 특히 난민인정률의 적정성을 둘러싸고 전개되었다. 이제는 인정률 논쟁을 넘어 난민보호체계 전체의 질과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여야 한다. 앞으로의 과제는 난민협약이 요구하는 보호의 원칙을 국내 제도와 정책에서 얼마나 실효적으로 구현할 것인가에 있다.
난민보호는 난민인정이라는 하나의 결정이 아니라 연속된 과정이다. 보호를 요청할 수 있어야 하고(Access), 공정한 절차에 따라 심사받아야 하며(Procedural Fairness), 보호가 필요한 사람에게 실효적 지위가 부여되어야 한다(Effective Protection). 그 이후에도 난민이 국가의 일반적인 제도 안에서 자립하고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통합될 수 있어야 하며(Integration),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정책의 결정 과정에도 참여(Governance)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이 안정적으로 작동할 때 비로소 지속가능한(Sustainability) 난민보호가 가능하다. 한국은 난민법 제정과 난민심사제도의 개선을 통해 접근성과 절차적 공정성에서는 일정한 진전을 이루었지만, 실효적 보호와 사회통합, 지속가능성의 측면에서는 여전히 보완해야 할 과제가 많다.
실효적 난민보호는 난민심사를 단순한 출입국관리의 일부가 아니라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국제적 보호절차로 인식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난민과 일반적인 외국인의 출입국은 그 목적과 성격이 다르다. 난민심사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강화하고 출입국관리 중심의 관점에서 벗어나, 난민신청자의 절차적 권리와 인권보호를 중심으로 심사체계를 발전시켜야 한다. 심사의 투명성과 중립성, 전문성을 확보하는 것은 난민협약을 국내적으로 실효성 있게 이행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공정한 심사와 난민인정으로 난민보호가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난민인정은 보호의 시작이다. 본국으로 안전하게 귀환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수용국 또는 제3국에서 자신의 삶을 다시 설계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현행 난민법에 따른 재정착제도를 안정적으로 발전시키는 한편, 노동, 교육, 가족결합, 지역사회 후원 등 다양한 보충적 보호경로를 함께 제도화하고 확대하여야 한다. 다만, 이러한 보충적 경로는 기존의 난민인정이나 재정착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보완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보호의 다음 단계는 사회통합이다. 장기화된 분쟁과 박해로 자발적 귀환이 어려운 상황이 늘어나는 오늘날, 난민을 일시적인 수용과 지원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정책은 지속가능하기 어렵다. 난민을 교육, 의료, 노동, 주거와 같은 국가의 일반적인 제도 안에 포용하고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여야 한다. 장기체류 난민에게 안정적인 체류에서 영주와 국적취득으로 이어질 수 있는 예측 가능한 법적 경로를 마련하는 것도 이러한 사회통합의 중요한 조건이다.
난민과 선주민의 사회통합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난민정책의 거버넌스 역시 변화해야 한다. 난민보호는 난민심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 노동, 복지, 주거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시민사회, 대학과 기업 등이 함께 참여하는 다층적 협력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무엇보다 난민 당사자가 정책의 단순한 수혜자나 의견청취의 대상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난민정책의 설계·집행·평가 과정에 참여하고 공동 결정의 주체가 될 수 있을 때 난민정책은 현실에 기반한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
아시아 최초로 독립된 난민법을 제정한 한국의 경험은 국내적 의미에만 머물지 않는다. 난민협약이라는 국제적 보호 규범을 국내법과 사회통합정책으로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가는 난민보호체계의 제도화 정도가 국가마다 다른 아시아 지역에서도 중요한 과제이다. 한국은 독립된 난민법을 제정한 성과를 바탕으로 이제 법률의 존재를 넘어 난민보호의 실질적 완성도를 높이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난민협약은 지난 75년 동안 수많은 사람의 생명과 자유를 보호하는 국제적 규범으로 기능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의 난민문제는 협약이 만들어졌던 시대보다 훨씬 복잡하다. 이제 한국도 난민인정과 수용을 넘어 난민을 실질적으로 어떻게 보호하고,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난민은 인도주의적 동정의 대상도, 국가가 감당해야 할 부담만도 아니다. 난민은 우리와 함께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해 나갈 수 있는 인간이며, 헌법적 가치질서 안에서 동등한 존엄을 가진 존재이다. 난민보호의 궁극적 목적은 단순한 생존의 보장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함께 실현하는 민주적 공존에 있다. 난민협약 75주년은 과거의 성과를 기념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이 ‘난민을 심사하는 국가’를 넘어 ‘난민을 실질적으로 보호하는 국가’로 나아가는 새로운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저자 소개
최윤철(felixcyc@konkuk.ac.kr)
현) (사)한국이민법학회 회장, 건국대학교 이주·사회통합연구소 소장,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주요 저술>
『이민법』 (공저), (박영사, 2024).
“A Comparative Analysis of Refugee Protection and Responsibility-Sharing in Central Asia.” (공동), 『한국과 세계』 7(4), 2025.
“외국인아동의 출생등록을 위한 법제연구.” (공동), 『이화젠더법학』 17(1), 2025.
“헌정사적 측면에서 본 이주법제 형성과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 『법학연구』 26(2), 2023.
“현행 이주법제의 차별성에 관한 소고 – 입법원칙과 법률용어를 중심으로 -.” 『일감법학』 48, 2021.
관련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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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희 외 3인 (2023). “재정착난민의 지역사회 수용·정착·통합을 위한 정책과제.” 『정책연구보고서』 2023-05, 이민정책연구원.
최원근 (2023). “보충적 난민수용 경로와 난민보호: 캐나다의 노동경로와 TBB 모델을 중심으로.” 『인권연구』 6(2).
BVerfG (2012). “1 BvL 10/10.” Bundesverfassungsgericht, July 18.
Janmyr, Maja (2026). “A Duty from a Bygone Era? On UNHCR’s Promotion of New Accessions to the Refugee Convention.” International Journal of Refugee Law, eeag009.
Jubilut, Liliana (2026). “(Re)Centering the Right of Asylum and Refugees in the 75th Anniversary of the 1951 Refugee Convention.” Opinio Juris. Symposium on the 1951 Refugee Convention at 75, June 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