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말하는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은 무엇일까

2016년 발표된 일본의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전략은 기존 ‘아시아-태평양’으로 불리던 지역적 범위를 ‘인도-태평양’으로 재편하면서, 역내 국가들의 지역적 인식 틀과 이에 기인한 전략적 사고의 변화를 촉진하였다. 이는 미국의 패권적 힘의 상대적 쇠퇴와 중국의 급부상, 비전통안보 위협의 복합적 발현, 첨단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경제안보의 대두 등 국제 체제 내 변화를 촉발하는 요인들이 동시다발적·다층적으로 작용한 데 기인한다. 이에 일본은 새로운 외교적 대전략으로서 ‘인도-태평양 전략’을 구상하고 추진함으로써 기존 수동적이고 반응적 외교에 머물렀던 일본의 외교를 보다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방향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강민혜(아시아연구소)

‘인도-태평양 전략’의 씨앗을 뿌리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2016년 8월 27일 케냐 나이로비에서 개최된 제6차 도쿄 아프리카개발회의(Tokyo International Conference on African Development) 기조연설에서 일본의 새로운 지역 외교 구상인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전략(Free and Open Indo-Pacific Strategy)’을 국제사회에 발표했다(外務省, 2016). 이 연설에서 아베 총리는 국제 사회의 안정성과 번영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역동성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인도-태평양 전략이 지역 간 연결성 강화를 통해 아시아의 성공 경험을 중동과 아프리카로 확산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연설은 인도-태평양 전략을 일본의 공식 외교 담론으로 공표한 순간으로, 이를 통해 태평양과 인도양, 그리고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하나의 전략적 공간으로 연결하였다.

일본 아베 신조 총리가 인도-태평양 전략을 공식화하고 있다.
출처: 일본 외무성

 

2017년판 『외교청서』 특집에서 일본은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전략이 두 대륙, 즉 성장력이 두드러지는 ‘아시아’와 잠재력을 보유한 ‘아프리카’, 그리고 태평양과 인도양이라는 두 대양 간 연결성을 향상시키고 이 지역에서 자유시장, 법치, 시장경제의 확대를 통해 국제사회의 안정과 번영을 확보해 나가는 데 선도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진 일본의 새로운 외교 전략이라고 밝혔다. 2018년 외교청서에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그 실천 방안을 제시하고 있는데, 첫째, 항행의 자유와 법치의 보급 및 확립, 둘째, 국제 기준에 따른 양질의 인프라 개발을 통한 경제적 번영 추구, 셋째, 해양법 집행 역량 강화, 방재, 비확산 지원 등 평화와 안정을 위한 노력의 추진 등을 그 방안으로 제시하였다. 2017년에는 본 전략의 공간적 범위와 규범적 목표를 제시하였지만, 전략의 추진 방향과 정책적 체계를 충분히 명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선언적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2018년에는 법의 지배와 항행의 자유라는 규범적 원칙, 양질의 인프라를 통한 경제적 연결성, 해양법 집행 역량 강화와 비확산 등 전략을 추진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적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인도-태평양 전략이 단순히 해양안보 담론이 아닌 복합적 지역 전략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싹트기 시작한 새로운 규범

일본의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이 단순히 아베 개인의 정치적 사상과 외교적 해법에 의해서만 형성되었다고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렇다고 역내 패권 세력으로 성장하면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안보전략으로만 이해하는 것도 충분하지 않다. 형성의 초기부터 현재까지의 진화 과정을 살펴보면, 인도-태평양 전략은 중국의 부상과 해양 질서의 변화, 미국 중심의 지역질서의 불안정성 등에 기인한 급변하는 국제 체제적 변화에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보다 거시적이고 복합적인 관점에서 추진되었다고 보아야 한다(Koga, 2020).

일본은 해양국가로서 에너지와 식량, 주요 원자재의 상당 부분을 해외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지정학적 취약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 결과 국가 발전에 해상교통로의 안정은 필수적이다. 따라서 항행의 자유와 해양에서의 법치가 훼손되는 것은 일본의 국가 생존에 직결될 수 있는 중대한 안보 위협이며, 이것이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전략 구상의 첫 번째 배경에 있다. 두 번째로 동아시아 지역 내 미중 간 패권경쟁의 심화는 미국에는 안보, 중국에는 경제의 상당 부분을 의존하는 이중 구조에 놓인 일본의 외교적 선택 공간과 경제적 안정성을 동시에 제약할 수 있는 구조적 위협이 되었다.

 2000년대 이후 미국의 국력은 상대적으로 약화되기 시작한 반면 중국은 급속한 경제 발전을 바탕으로 국제 사회 내에서의 입지를 강화해 나가면서, 국제 체제 내 세력분포의 변화가 발생하였고, 이는 동아시아 지역의 구조적 불안정성을 촉발시켰다. 높은 대미 안보의존도를 가진 일본에 있어 미중 간 세력관계의 변화는 단순한 양자 관계의 변화가 아니라 자국의 생존과 번영에 영향을 미치는 안보 위협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국제 체제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강대국 간 경쟁은 역내 국가들로 하여금 진영 선택의 압력을 높이면서 궁극적으로 한 국가의 전략적 자율성을 훼손하는 핵심 요인이 된다.

이에 일본의 정책결정자들은 미일 동맹과 미국 주도의 질서에 크게 의존하는 기존 외교 전략만으로는 변화하는 지역질서의 안정성을 보장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기 시작하면서, 일본은 자신이 선호하는 규칙과 원칙을 인도-태평양 지역 질서에 반영함으로써 자국에 유리한 전략적 환경을 조성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일본은 인도-태평양 전략을 통해 법의 지배, 항행의 자유, 연결성과 공동 번영이라는 포괄적 언어를 강조하는 동시에, 인도-태평양 전략이 특정 국가를 배제하기 위한 군사전략이라는 인상을 완화하고자 하였다. 일본은 민주주의라는 국내 정치체제의 동질성보다는 법의 지배, 항행의 자유, 주권 존중, 개방성 및 연결성을 인도-태평양 전략의 전면에 배치함으로써, 정치체제가 상이한 아세안 국가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협력의 문턱을 낮추고자 했다. 또한 2018년 하반기부터는 초기 공식 명칭이었던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전략’이라는 용어를 점차 전면에서 제외하고, ‘구상’이라는 보다 보편적이고 비배타적인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대중 견제 또는 군사·안보적 인상을 완화하고자 했다(Satake et al., 2021). 이는 아세안의 권위주의 국가들 및 다양한 협력국의 참여 가능성을 확대하려는 담론적 조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7년 1월 20일 워싱턴 D.C. 연방의회 의사당에서 제45대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출처: The White House Website

 

미국 우위의 지역질서에 대한 불확실성은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이후 새로운 국면에 들어서게 된다. 트럼프(Donald Trump) 1기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은 미국이 자유주의 국제질서로부터 전면 철수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자주의적 경제질서와 동맹 관리에 대한 미국의 관여 방식이 이전보다 선택적이고 거래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불확실성을 증대시켰다(Mastanduno, 2019). 실제로 미국 대외 정책은 보호무역조치 강화, TPP와 같은 다자주의 국제협정에서의 이탈, 동맹국에 대한 방위비 증강 압박 등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미국의 행태는 대미 동맹을 안보의 근간으로 하는 일본으로 하여금 탈냉전 이후 미국이 제공해 온 규범적 리더십이 약화되었다는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이 시기 중국의 상대적 국력 증대와 미국의 대중국 정책 전환이 맞물리면서 미중 경쟁은 군사·안보 영역을 넘어 무역, 첨단기술, 금융, 공급망과 국제 규범을 둘러싼 복합적 경쟁으로 확대되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국제 체제의 불안정성은 코로나19 팬데믹의 확산과 함께 가속화되면서 자유주의 무역질서에 의존해 온 기존 국제 질서의 약화로 이어졌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비전통안보 위협을 강화시키는 동시에 저비용과 효율성을 중심으로 구축되어 온 글로벌 공급망의 취약성을 현실화시키면서 경제 안보 논의를 국가 정책의 핵심 의제로 부상시키고, 공급망 회복력과 중요기술 보호를 위한 제도화를 촉진시켰다. 미국적 리더십의 공백과 함께 나타난 국제 체제 내 다층적 위협 요인은 국제 질서의 블록화와 분절화를 촉발시켰으며, 일본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규범 형성 차원에서 실질적 제도화로 전환하게 된 근본적인 배경이 되었다.

이러한 국제 체제의 구조적 변화를 겪으면서 일본은 미일 동맹과 미국 주도 지역질서에 크게 의존해 온 기존 접근을 유지하면서도, 지역질서의 규칙과 협력 구조를 직접 설계하고 추진하는 역할을 확대하고자 하는 의지를 강화하게 된다. 이는 2007년 일본 총리직에서 사퇴한 후 2012년 약 5년 만에 다시 총리직으로 돌아오면서 밝힌 ‘적극적 평화주의’라는 슬로건과 그 맥을 같이 하고 있으며(安倍晋三, 2014), 이처럼 일본이 지역 안보 질서 형성을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은 인도-태평양 전략 발표와 그 이후 실질적 외교 정책으로 발현되었다.

발표 초기 인도-태평양 전략은 이 지역에 규범적 원칙과 공간적 비전을 제시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면, 2020년 이후 일본 정부는 이를 국내 법제, 대외 지원과 안보 협력망 구축을 통해 실행 가능한 정책 체계로 구체화하고 있다.

2023년에는 새로운 인도-태평양 계획을 제시하고, 평화의 원칙과 번영의 규칙, 인도-태평양 공동과제 대응, 다층적 연결성 강화, 해양에서 하늘로 확장하는 안보라는 네 가지 축을 제시함으로써 정책 대상의 범위를 우주, 환경, 기술 등으로 확대하였다. 이처럼 일본은 하나의 규범적 원칙으로서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넘어 국제 질서 구축을 선도하고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지속 가능한 전략적 정책틀로 발전시켰다. 대내적으로는 관련 법안과 국가 전략, 행정 조직을 재정비함으로써 정책의 지속성과 집행력을 확보하였으며, 대외적으로는 인도-태평양 전략의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다층적 협력망을 구축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 전통적 동맹국들뿐만 아니라 아세안과 태평양 도서국, 아프리카 국가들과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을 협력 대상에 포함함으로써 본 전략의 외연을 확대해 나갔다. 경제 분야에서는 경제안전보장추진법을 제정하고 공급망 회복탄력성 강화와 핵심 기반시설 보호, 민관협력을 통한 핵심기술 육성 및 보호 등의 제도를 마련하였으며, 경제안전보장담당대신을 신설하고 반도체, 배터리, 의약품, 통신망 등의 전략물자는 국가가 직접적으로 통제함으로써 안정적 공급과 핵심기술 보호를 위한 방안을 마련하였다. 군사안보 분야 역시 국내 방위 제도와 역량을 정비하기 위한 대책을 모색하였는데, 그 방안으로 국가안전보장전략, 국가방위전략, 방위력정비계획을 일괄 개정하고 경제안보와 기술 및 정보를 포함하는 포괄적 안보전략을 수립하였다. 이러한 대책은 미일 동맹을 안보정책의 기축으로 유지하면서도, 다양한 전략적 파트너와의 기능적 협력을 통해 지역 안보망을 다층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일본은 호주·영국·필리핀과 상호접근협정(RAA: Reciprocal Access Agreement)을 체결하여 자위대의 활동 범위를 넓혔으며, 4자 안보 회담(QUAD: Quadrilateral Security Dialogue)을 통해 해양상황 인식, 재난대응, 주요 기술과 인프라 분야의 기능별 협력을 확대해 왔다.

특히 2023년 도입된 정부안전보장능력강화지원(OSA: Official Security Assistance)은 대외원조와 안보정책을 결합한 것으로서, 비군사적 개발협력에 한정되어 있던 기존 공적개발원조(ODA: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원칙에서 벗어나 개발도상국의 안보역량을 강화하고 일본에 유리한 전략환경 조성을 실현시킨 대표적 사례이다. 일본은 OSA를 통해 협력국가의 해양감시, 통신, 레이더, 안보 인프라와 억지력 향상 등을 지원하는 무상원조체계를 구축하고, 일본의 경제력을 활용하여 협력국의 자립적 방위역량을 향상시키는 동시에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강조하는 법치와 항행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실현시키고자 했다. 이러한 일련의 방안들은 미일 동맹을 대체하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국가와 기능별로 협력할 수 있는 중첩적 안보망 형성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인도-태평양 전략’이 마주한 포용성과 제도화의 딜레마

일본의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은 다양한 차원에서 나타나는 국제 체제의 구조적 변화에 복합적으로 대응하고자 법의 지배와 항행의 자유, 개방성과 연결성, 공동의 번영과 같은 규범적 구상을 주창하면서 등장하였지만, 이러한 규범적 구상은 국내외 제도와 정책 수단에 반영되고 제도화가 심화될수록 그 내부 긴장 역시 분명해지고 있다. 일본은 인도-태평양 전략이 특정 국가를 배제하지 않는 포용적이고 보편적인 비전임을 강조하지만, 정책적 형성 과정을 들여다보면 중국의 해양활동 확대와 역내 영향력 강화에 대한 대응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순은 인도-태평양 전략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향후 일본이 포용성을 표방하는 담론과 선택적 억지를 강화하는 정책 사이의 긴장을 얼마나 일관되고 설득력 있게 조정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저자 소개

강민혜(minkang0320@snu.ac.kr)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방문학자이다.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학 박사를 취득하고, 현재 서울대학교 한국정치연구소 객원연구원,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방문학자로 활동하고 있다. 일본의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을 국제 체제적 관점에서 작성하였으며, 주요 연구 분야는 동아시아 국제정치, 일본외교, 중견국 전략 등이다.

참고문헌

安倍晋三. 2014. “豪州国会両院総会 安倍内閣総理大臣演説.” 首相官邸. 7月8日.

外務省. 2016. “TICAD VI開会に当たって―安倍晋三日本国総理大臣基調演説.” 8月27日.

外務省. 2017. 『外交青書2017』. 東京: 外務省.

外務省. 2018. 『外交青書2018』. 東京: 外務省.

Koga, Kei. 2020. “Japan’s ‘Indo-Pacific’ Question: Countering China or Shaping a New Regional Order?” International Affairs 96(1): 49-73.

Mastanduno, M. 2019. “Liberal Hegemony, International Order, and US Foreign Policy: A Reconsideration.” The British Journal of Politics and International Relations 21(1): 47-54.

Satake, Tomohiko and Ryo Sahashi. 2021. “The Rise of China and Japan’s ‘Vision’ for Free and Open Indo-Pacific.” Journal of Contemporary China 30(127): 18-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