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과 랩에 담긴 인도네시아 사회의 현실

197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힙합 문화는 1980년대 중반부터 인도네시아의 청년 문화에 영향을 주었다. 그중에서도 음악 장르로서의 힙합과 랩은 점차 인도네시아의 언어로 인도네시아 동시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경험과 감정을 담아내는 매개로 발전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장르 음악의 지형은 상업성과 대중성을 추구하는 곡부터 사회 비판과 저항정신을 강조하는 곡까지 매우 다양하다. 또한 랩의 언어에 담긴 메시지는 시대에 따라 바뀌는 다양한 음악적 스타일과 결합하며 대중들에게 서로 다른 호소력을 지니게 된다. 이 글에서는 폭넓은 스펙트럼으로 전개된 인도네시아의 힙합과 랩이 시대와 삶의 모습을 어떻게 반영하는지 살펴본다.

최서연(서울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인도네시아 뮤지션 TuanTigabelas의 공연 장면
출처: Instagram(@tuantigabelas)

 

1970년대 미국 뉴욕 사우스 브롱스(South Bronx)의 거리에서 시작된 힙합(hip hop) 문화는 이미 1980년대 중반부터 아시아 이곳저곳의 젊은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미국으로부터 흘러 들어온 오디오 카세트와 VHS 비디오 테잎, 1990년대에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송출되기 시작한 MTV 채널을 통해 힙합 문화가 퍼져나갔다. 그리고 서로 다른 언어, 문화, 정치, 경제 상황에 있던 아시아 각지의 청년들은 이내 미국의 힙합 문화, 특히 음악 장르로서의 힙합을 자신들의 삶과 이야기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변형시켰다. 그렇게 영어는 모국어로 대체되고, 가사에는 미국 뒷골목 대신 자신이 속한 사회의 이야기가 담겼으며, 뮤직비디오에는 자신이 사는 곳의 거리와 건물과 사람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싱가포르에서 해마다 열리는 아시아 대중음악 페스티벌 Baybeats를 소개하는 글은 힙합이 아시아에 수용되고 변형된 과정을 이렇게 표현한다. “필리핀과 대만의 힙합 음악이 1990년대 뉴욕의 붐뱁(boom-bap)과 비슷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가사는 같은 나라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희망과 절망에 호소”한다(Peters, 2024).

동남아시아에서 인구가 가장 많고, 지역에 따라 문화와 언어도 다양하며, 대중음악의 역사가 길고 음악시장의 규모가 큰 인도네시아에도 1980년대에 미국의 힙합 문화가 유입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흐른 지금, 인도네시아의 힙합 음악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다채롭고 풍요롭게 발전했다. 세계적 음악 트렌드를 빠르게 반영하며 시장성과 대중성 강조하는 주류(mainstream) 힙합부터, 방송이나 음반 자본과 거리를 두고 독립적으로 음악 활동을 하며 분명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언더그라운드(underground) 힙합에 이르기까지 매우 흥미롭고도 폭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이 형성되었다. 이 글에서는 인도네시아 대중음악에 힙합 문화가 등장한 1980년대 중반부터 힙합과 랩이라는 음악 장르가 시기에 따라 변화해 온 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등장한 음악이 당시 사회의 현실을 해석하고 드러내는 방식을 살펴본다.

논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이 글에서 사용하는 주요 용어를 간단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종종 힙합(hip hop)과 랩(rap)은 같은 음악 장르를 지칭하는 용어로 혼용된다. 그러나 힙합은 비트(beat)를 타고 운율(rhyme)과 흐름(flow)이 있는 가사를 밀도 있게 전달하는 랩뿐만 아니라, 공연에 사용되는 음악을 연출하는 디제잉(DJing), 브레이크댄스(breakdancing), 그래피티(graffiti)를 포함하는 하나의 문화이다. 우리가 보통 접하는 노래 ‘한 곡’에는 비트를 타고 진행되는 랩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음악적 요소가 포함된다. 힙합을 대중음악 장르로 좁게 해석하더라도, 랩은 힙합 장르의 음악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이지만 특정 곡이 가지는 호소력은 랩의 가사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1]. 가장 강력한 사회 비판을 담은 랩은 종종 무게감 있는 비트, 어두우면서도 화려한 사운드, 가사의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무대 연출 및 영상과 결합하면서 폭발적인 호소력을 얻는다. 또한 별다른 의미가 없는 랩이 매력적인 음악이나 패션 스타일과 결합하면서 특정 세대의 문화 트렌드를 주도하기도 한다.

인도네시아에 힙합 음악이 유입되어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아가던 1980년대 중반에서 1990년대는 사회, 경제, 정치 전반에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던 시기였다. 1965년 군부 세력이 주도하는 대규모 학살과 함께 정권을 잡은 수하르또(Suharto)의 신질서(New Order) 정권은 강력한 국가 주도의 경제발전 사업을 추진했다. 이 시기에 인도네시아의 주요 도시에는 정부 주도 사업으로부터 직간접적인 혜택을 받은 새로운 중산층이 형성되었다. 집권 과정에서 미국의 지원을 받았던 신질서 정권은, 반서구 성향의 비동맹노선(non-alignment policy)을 택했던 이전 정권과는 달리, 미국 대중문화의 유입에 대해 매우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1980년대 인도네시아 힙합과 랩의 태동기에 두드러진 것은 바로 미국 문화의 영향을 받은 도시 중산층 젊은이들의 문화였다. 그러나 1990년대 정치적인 위기에 처한 정권이 종교적 보수주의와 손을 잡으면서 사회문화 전반에 걸친 감시와 검열이 강화되는 가운데, 여러 도시에 형성된 언더그라운드 힙합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강력한 사회 비판의 메시지를 담은 음악이 만들어졌다. 신질서 정권이 무너진 1998년 이후에는 해외의 최신 음악 트렌드와 도시의 소비문화를 지향하는 다양한 스타일의 힙합이 등장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권의 교체 이후에도 여전히 지속되는 국가의 폭력과 경제적 불평등, 무분별한 자원개발 사업이 초래한 재난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힙합과 랩을 통해 지속적으로 표출된다.

 

1980년대: 인도네시아 힙합 문화의 시작

1970년대 미국 뉴욕에서 시작된 힙합 문화는 어떻게 인도네시아까지 영향을 주게 되었을까? 1984년과 1985년의 뉴스에서는 수라바야, 자카르타, 반둥, 족자카르타 등 주요 도시에서 열린 브레이크댄스 페스티벌 관련 보도를 자주 찾아볼 수 있다. 또한 1985년 브레이크댄스 영화 <Gejolak Kawula Muda(청춘의 격정)>를 비롯해 1984년과 1985년 사이여 여러 편의 브레이크댄스 영화가 개봉되었다(Abdulsalam, 2019). 미국의 힙합과 랩에 접근하는 데는 영어라는 언어장벽이 있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음악보다 힙합 문화의 다른 요소들이 먼저 퍼져나갔다. 브레이크댄스 영화의 인기와 함께 대도시의 길거리에는 젊은이들의 모임 장소가 생겨났고, 뒤이어 농구와 그라피티, 그리고 나중에는 랩(rap)과 디제잉(DJing)이 청년 하위문화의 중요 요소로 등장했다(Yanko, 2022:55). 그리고 점차 힙합 리듬을 타고 인도네시아어로 노래와 랩을 하는 국내 음악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Denny Malik의 ‘Jalan-Jalan Sore(저녁의 외출)’(1989)이나 Farid Harja의 앨범 <RAP Demam Disco(디스코 열풍 랩)>(1991)의 수록곡은 힙합 리듬과 인도네시아어 랩에 익살과 가벼운 세태 비판까지 더하며 본격적인 힙합과 랩의 등장을 예고했다.

힙합 문화는 미국 빈민가의 흑인 청년들로부터 시작했지만, 인도네시아에서 이를 가장 먼저 받아들인 것은 도시의 중산층 젊은이들이었다. 대중문화를 포함한 모든 분야에서 반식민과 반서구 노선을 채택했던 초대 대통령 수까르노(Sukarno)와는 달리, 1965년의 군부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수하르또(Suharto)의 신질서(New Order) 정부는 미국을 비롯한 서구 대중문화에 대해 우호적이었다. 일부 관료들은 힙합 문화를 비판하기도 했지만, 지나치지 않도록 적절히 관리 감독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의견도 제시되었다(Abdulsalam, 2019). 무엇보다도 힙합 문화를 통해 표출된 젊은이들의 반항심은 사회의 불평등과 부조리에 대한 불만의 표현이었다기보다는, 세대 간의 가치와 문화 차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1980년대의 브레이크댄스 영화와 1990년대 중반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힙합과 랩의 주인공은 종종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도시의 삶 속에서 답답함과 권태를 느끼는 젊은이였다. 급속한 경제발전과 함께 등장한 도시 중산층 자녀들이 국영 라디오를 통해서 들었던 힙합과 랩은 불평등한 사회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비주류(underground) 음악이 아니라 주로 LL Cool J와 같은 미국의 상업적 주류(mainstream) 래퍼의 노래였다(Yanko, 2021:362).

 

1990년대: 본격적인 힙합과 랩의 등장

199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인도네시아에는 본격적인 음악 장르로서의 힙합과 랩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특히 Iwa K의 등장과 힙합 컴필레이션 앨범 시리즈 <Pesta Rap(랩 축제)>의 발매는 현재까지 그 영향력이 이어지는 중요한 사건이다. 오늘날 인도네시아 힙합과 랩의 개척자로 여겨지는 Iwa K는 반둥(Bandung) 출신의 MC이자 래퍼로 그가 1993년에 발표한 <Kuingin Kembali(돌아가고 싶어)>는 인도네시아 최초의 정규 힙합 앨범이다[2]. 그는 미국에서 유입된 붐뱁과 지훵크(G-funk) 스타일을 인도네시아 언어의 흐름(flow)과 자연스럽게 결합하는 동시에, 자신의 경험과 주변 사회의 맥락에 천착하는 가사로 인도네시아어 힙합과 랩의 표본을 확립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지금까지 가장 많은 판매를 올린 인도네시아 래퍼이며 현재까지도 활발하게 활동한다. 이 앨범에 실린 ‘돌아가고 싶어(Kuingin Kembali)’, ‘밤거리의 사람들(Manusia Malam)’, ‘걷는 꿈(Mimpi Berjalan)’, ‘숨어있는 배트맨(Batman Kasarung)’ 같은 곡들은 주로 힙합 문화를 접한 도시 젊은이의 삶을 그려낸다.

Manusia Malam – Iwa K, <Kuingin Kembali> (1993)

1994년에 발표된 Iwa K의 두 번째 앨범 <Topeng(가면)>은 강한 비트와 강렬한 랩에 이전보다 뚜렷한 사회 비판의 지향을 담았다[3]. 첫 번째 앨범과의 차이는 수록곡의 제목인 ‘자유롭게(Bebas)’, ‘가면(Topeng)’, ‘시궁창의 쥐(Tikus Got)’ 등에서 이미 드러난다. 비록 사회 비판적 성격의 미국 힙합과 랩에 비해 언어가 순화되어 있지만,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매우 분명하다. 1990년대 인도네시아 힙합과 랩은 “상징이나 서사를 활용하지만, 비판의 대상이 되는 인물이나 사건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는” 특징이 있다. 당시 정치적 위기에 처해 있던 군부독재 정권이 언론과 대중문화에 대한 검열을 강화하는 상황에서, 음악가들은 의미가 모호하며 다양한 해석에 열려있는 가사를 택해야 했다는 것이다(Yanko 2021:361). 그러나 힙합과 랩이 사회 비판의 메시지를 전달한 사례가 드문 한국의 기준에서 보면(강일권, 2025), 부패한 정치인을 ‘시궁창의 쥐’에 비유한다거나, 부도덕한 권력자가 쓰고 있는 위선의 ‘가면’에 대해 노래하는 것 자체가 매우 강력한 저항의 표현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Topeng’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가면은 이제 복종의 도구가 되었네.

진실에 진저리를 치며 거짓을 좇는 부류의 손에서.

가면은 춤이나 공연 무대에서만 볼 수 있는 게 아니야.

이제는 가면이 삶의 모든 길목에 어슬렁거리지.

가면은 잔인하고 추악한 본래 모습을 감추고 자비로운 얼굴을 보여주지. (중략)

오늘 오후에는 그의 고상한 얼굴을 봤어.

항상 힘없는 사람들을 위한다고 이야기하지. 서로 돕는 건 당연하다고.

사실은 그냥 자기 이름을 알리려는 것뿐이야.

― Iwa K – ‘Topeng(가면)’ 중에서

Topeng – , <Topeng> (1994)

<Pesta Rap(랩 축제>는 1995년에 자카르타의 레코드 레이블 Musica Studio’s에서 발매한 힙합 컴필레이션 앨범이다. 특히 Black Skin의 ‘Cewek Matre(물질적인 그녀)’, BLAKE의 ‘Bosan(지루해)’, Boyz Got No Brain의 ‘Nyamuk(모기)’ 등이 인기를 얻으면서, 후속 앨범 <Pesta Rap 2>(1996), <Pesta Rap 3>(1997)까지 연이어 발표되었다. 1998년에는 세 앨범의 인기곡을 모아 놓은 <The Rap Party>까지 나오면서 1990년대 후반 인도네시아 힙합과 랩의 중요한 흐름으로 자리매김했다.

<Pesta Rap>에 담긴 노래의 가사는 직접적으로 권력과 사회제도를 비판하지는 않는다. 1994년에 나온 Iwa K의 <Topeng>과 비교해 봐도 사회 비판의 목소리는 두드러지지 않는다. 오히려 당시의 도시 젊은이들이 거리에서 만들어 내던 하위문화(subculture)에 미국 힙합 문화가 끼친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앨범에서 가장 큰 인기를 얻은 Black Skin의 ‘Cewek Matre’ 뮤직비디오는 그라피티로 가득한 벽과 어수선한 골목을 배경으로 한다. 노래와 랩을 하는 이들은 당연히 미국 뒷골목의 흑인 청년들이 아니라 인도네시아 도시의 거리를 어울려 다니는 젊은이들이다. 이들은 미국의 시카고 불스(Chicago Bulls) 농구팀의 유니폼과 나이키(Nike)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길거리 농구를 하거나 거리를 배회하다가, 멋진 자가용을 몰고 나타난 매력 없는 부자 남성이 젊고 아름다운 여성의 관심을 받는 모습을 목격한다. 랩은 부유한 남성을 유혹해 소비 욕구를 채우려는 여성(cewek matre)을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Cewek Matre – Black Skin, <Pesta Rap> (1995)

같은 앨범에 실린 다른 두 곡은 1980년대와 90년대를 지나면서 형성된 도시 부유층 자녀들(Anak Gedongan)이 밖에서는 흥겹게 파티를 즐기고 안락한 집에 머무를 때는 ‘엄마 아빠가 맨날 집에 없고, 냉장고는 텅 비었고, 나는 심심해서(Bosan) TV를 본다’고 불평하는 내용을 담았다. 여기서 사용된 ‘도시 부유층(gedongan)’이라는 단어는 인도네시아의 대중음악 연구에서 ‘도시 상층계급 취향의 음악’과 ‘시골 하층계급 취향의 음악(kampungan)’을 구분하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Baulch, 2020).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 신질서 정권의 붕괴와 언더그라운드 힙합

Iwa K가 힙합 정규 앨범을 연이어 발표하며 인도네시아 힙합에서 선구적인 래퍼로 자리잡는 사이, 자카르타(Jakarta), 반둥(Bandung), 족자카르타(Jogjakarta), 수라바야(Surabaya) 등 주요 도시에는 대중성과 상업성보다는 뚜렷한 주관과 독립성을 추구하는 언더그라운드 힙합 커뮤니티가 형성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하게 사회 비판의 가치를 추구한 것은 반둥의 힙합 커뮤니티였다. 정치적 위기에 처한 군부독재 정권과 보수적 이슬람 세력의 결탁이 공고해지는 가운데, 인도네시아를 강타한 1997년 경제위기는 사회불안과 대규모 시위를 촉발시켰고, 결국 1998년 신질서 정권은 붕괴하게 된다. 격동하는 정치 상황은 반둥의 언더그라운드 힙합이 추구하는 사회 비판의 목소리에 호소력을 더해주었다.

197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까지 하드코어(hardcore)와 펑크(punk)에 심취했던 반둥의 청년들에게 1980년대에서 90년대 중반까지 유행했던 힙합은 귀에 부드럽게 감기지만 “격렬한 느낌은 부족한(kurang garang)” 음악으로 여겨졌다(Yanko 2021:362). 따라서 반둥의 언더그라운드 힙합은 상업적인 성격이 강한 국내외 힙합의 흐름으로부터 거리를 유지했다. 이 집단의 형성에서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MC이자 래퍼 Morgue Vanguard와 Sarkasz가 1995년에 결성한 듀오 Homicide였다[4].

미국 힙합과 랩의 다양한 흐름 중에서도 이들이 참고한 것은 1960년대 말 뉴욕에서 결성되어 흑인 인권을 노래한 The Last Poets, 그리고 1980년대 힙합에서 사회의식을 추구한 대표적 밴드 Public Enemy였다. Homicide는 음악이 즐거움과 소비생활의 향유에 대한 관심을 넘어 경제, 문화, 정치를 아우르는 자기결정권을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Harkness, 2007). Homicde가 2000년대 초에 발표한 네 개의 앨범―<Godzkilla Necronometry(감시와 처벌의 괴물)>(2002), <Barisan Nisan(묘비의 행렬)>(2004), <Prosa Tanpa Tuhan(신 없는 산문)>(2003), <Illsurrekshun(불온한 반란)>(2006)―에는 당시 인도네시아 정치와 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담겨있다. 아래 곡은 특히 신질서 정부가 무너진 1998년 이후에도 계속되는 정부의 통제와 감시, 기업 자본주의와 종교 보수주의의 결합 등을 비판하면서, 허울뿐인 민주주의와 순응을 강요하는 주류문화에 대한 저항을 선언한다.

Homicide의 Senjakala Berhala, 앨범 <Barisan Nisan>(2004) 20주년 기념 공식 뮤직비디오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까지 반둥의 언더그라운드 힙합과 랩에 담겼던 사회 비판의 목소리는 당시의 청년이 중년으로 나이가 들어도 사라지지 않았다. 반둥의 1990년대 하드코어 음악을 음반으로 남긴 Harder Records와 2010년에 Homicide의 Morgue Vanguard가 동료 힙합 아티스트와 공동으로 설립한 Grimloc Records는 거리에서 형성된 힙합 커뮤니티와 그들의 랩에 담긴 사회적 저항의 정신을 레코드 레이블로 발전시켰다. 인도네시아의 대부분 힙합 레이블과는 달리, Grimloc Records는 음악적 지향을 공유하는 음악가들이 직접 음반의 제작과 배급에 참여하도록 함으로써 지금까지도 인도네시아 하드코어 음악 커뮤니티를 뒷받침하고 있다(Yanko 2021:361). 사회 비판을 지향하는 젊은 힙합 콜렉티브 Def Bloc과도 함께 작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Morgue Vanguard 자신도 이 레이블을 통해 지속적으로 음악적 협업의 결과물을 발표하고 있다. 그가 같은 세대를 대표하는 또 다른 래퍼 Doyz와 함께 2018년에 발표한 <Demi Masa>라는 앨범은 인도네시아 힙합과 랩의 명반으로 평가된다.

Grimloc Records 홈페이지(좌)와 Morgue Vanguard & Doys의 앨범 (2018)(우)
출처: Grimloc Records(https://grimlocstore.id/)

 

2000년대 중반 이후: 주제, 언어, 음악적 스타일의 다변화

주요 대도시에 형성된 언더그라운드(underground) 힙합이 청년의 하위문화에서 실체가 있는 음악 활동 공동체로 변화해 가는 동안, 다른 한편으로는 상업적 주류(mainstream) 힙합 음악이 화려한 욕망으로 가득한 도시 젊은이들의 정서를 대변하며 다양한 갈래로 발전했다. 2000년대 중반 이후의 힙합과 랩에서는 해외 음악의 트렌드를 반영하는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졌다. 미국 Limp Bizkit과 Rage Against the Machine 등의 영향을 받아 랩코어(rap-core)와 힙메탈(hip metal)을 추구한 St. Loco와 7 Kurcaci, 2010년대 중반 인터넷을 기반으로 유명세를 얻은 Young Lex와 Rich Brian[5], 힙합의 다양한 리듬과 스타일을 아우르며 강렬한 카리스마로 여성 래퍼의 존재감을 각인시킨 Ramengvrl, 장르를 넘나드는 실험적 스타일의 래퍼이자 프로듀서 BAP. 등이 주목할 만하다. 음악 공동체를 이루어 협업하는 힙합 콜렉티브로는 Westwew, ONAR, PORIS 등이 잘 알려져 있다. 개인이나 콜렉티브에 따라 음악적 스타일이나 다루는 주제에 차이는 있지만, 이들이 구사하는 랩은 주로 개인의 감정과 욕망, 자아의 과시, 소비와 유흥 문화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 활동하는 힙합 음악가 가운데서 TuanTigabelas의 역할은 중요하고도 흥미롭다. 그는 스포티파이 월별 청취자 수 22만이 넘는 대중성 있는 MC, 래퍼, 프로듀서이며, 최근에는 대만, 싱가포르, 미국, 태국 등 해외 페스티벌에서도 공연했다. 최근 트랩(trap)과 팝랩(pop-rap) 스타일이 유행하는 상황에서도, 그의 음악은 고전적인 붐뱁 스타일을 바탕으로 전통음악, 소울(soul), 재즈, 전자음악 등의 다양한 요소를 아우른다. 또한 최근의 주류 힙합이 과시적 소비와 자기애를 주된 관심사로 삼고 있는 데 반해, 그는 사회의식을 담은 가사, 꾸밈없이 직설적인 서사, 환경문제에 대한 비판을 고수한다(Yanko, 2022).

R.E.P라는 힙합 밴드로 시작해 솔로 활동을 이어가며 곡을 발표하던 그는 2019년에 정규 앨범 <Harimau Soematra>를 내놓았다. 여기에 실린 ‘마지막 포효(Last Roar)’는 1990년대 스타일의 붐뱁과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결합한 곡으로, 자신을 발리와 자바의 동족이 멸종된 후에 외롭게 살아남은 수마트라 호랑이로 설정하고 다음과 같은 랩을 이어간다.

나의 밀림이 벌목되고 불태워진 자리에 팜오일 농장이 들어섰지.

너는 이윤이라는 이름의 신을 섬기며 나의 밀림을 고통으로 몰아넣네.

헐벗고 메마르고 척박한 토양을 두 눈으로 확인하거라. 이 악당들아.

너는 이득에 눈이 멀고, 땅은 고통에 신음하는구나.

― TuanTigabelas – ‘Last Roar(마지막 포효)’ 중에서

그는 또한 그린피스 인도네시아(Greenpeace Indonesia)가 에너지 산업과 자연 파괴를 주제로 여러 음악가와 협업한 앨범 <Senandung Energi Bumi(대지의 기운을 노래하다)>(2019)에 ‘Fought the System(체제에 맞서 싸웠네)’이라는 곡으로 참여했다. 스포티파이에서 104만, 유튜브에서는 146만 회 넘게 재생된 이 곡에는 개발업자가 버리고 간 폐광산 웅덩이에 빠져 사망한 사람들의 숫자, 2015년 광산 개발에 반대하다가 끌려가 고문 살해당한 사람의 이름, 나무가 베어진 채 불타는 밀림, 무자비한 개발에 저항하는 시위대와 이를 진압하는 경찰이 등장한다.

너는 땅의 뱃속까지 파헤쳐 내용물을 꺼내고

남김없이 물을 뺀 웅덩이를 방치하지

피해자들을 걱정한다고? 웃기고 있네

목숨 따위는 헐값으로 사들이면 되는 줄 알지

땅은 사라지고 농사지을 곳도 없는데

국가 발전이라는 명분으로 땅을 망가뜨리고

오염으로 우리를 독살하네.

― TuanTigabelas – ‘Fought The System(체제에 맞서 싸웠네)’ 중에서

Fought The System – TuanTigabelas, <Senandung Energi Bumi> (2019)

 

인도네시아 힙합과 랩에서 무엇을 듣고 느낄 것인가?

미국의 힙합 문화, 특히 음악 장르로서의 힙합과 랩은 지난 40여 년 동안 인도네시아의 언어로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경험과 사회 변화를 담아내도록 변화해 왔다. 가사와 음악에 담긴 삶의 모습은 소비의 욕망이나 혼란스러운 자아의 모습일 수도 있고, 부패한 정권, 경제적 불평등, 지배층의 위선, 개발사업으로 인한 환경 파괴에 대한 비판일 수도 있다. 힙합과 랩이 미국에서 온 음악 스타일과 가사의 모방을 넘어, 인도네시아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정, 고민, 경험, 생각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자리매김했다는 사실은 한국에서 인도네시아의 힙합과 랩을 접하는 사람들에게도 시사점을 준다. 다른 사회에서 만들어진 음악을 듣는 행위는. 완성된 대중음악 ‘상품’을 ‘취향’에 따라 ‘소비’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그 음악이 사회에 대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일 때 비로소 의미와 감동을 남겨줄 것이다.

저자 소개

최서연(seoyeonc@snu.ac.kr)

동남아시아 사회를 연구하는 인류학자로 역사적 상황에 따른 문화의 변화 과정에 특히 관심이 있다. 서울대학교 인류학과와 아시아언어문명학부에서 동남아시아의 역사와 문화 및 현대사회에 관해 가르쳤으며, 『말레이세계로 간 한국 기업들』, 『오늘을 넘는 아시아 여성』의 집필에 참여했다. 최근에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의 대중문화와 관련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대중음악의 열성적인 애호가이다.

참고문헌

강일권, 2025. “한국 힙합은 왜 사회에 침묵할까?” 시사IN (3월 21일).

Baulch, Emma. 2020. Genre Public: Popular Music, Technologies, and Class in Indonesia, Middletown: Wesleyan University Press.

Harkness, Ben. 2007. “Homicide and hip-hop,” Inside Indonesia (July 15) https://www.insideindonesia.org/editions/edition-8522/homicide-and-hip-hop

Husein Abdulsalam. 2019. “Breakdance 1980-an: Digandrungi Pemuda, Dituduh Tidak Pancasilais” tirto.id (April 29) https://tirto.id/breakdance-1980-an-digandrungi-pemuda-dituduh-tidak-pancasilais-dnfZ

Peters, Daniel. 2024. “#WYNTK: Southeast Asian Hip Hop: Killer beats from the Philippines to Indonesia,” Esplanade Offstage, (September 26) https://www.esplanade.com/offstage/series/wyntk/2024/wyntk-southeast-asian-hip-h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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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nko, William. 2022. Mapping the Politics of Indonesian Hip Hop, Ph.D. thesis, RMIT University.

각주

[1] 예를 들어 한국의 방송용 ‘랩 대결(battle)’은 <쇼미더머니>라는 ‘힙합 대결’의 틀 안에서 진행되지만, 인도네시아의 <Rhyme Pays Battle Rap League>에서는 비트와 가사의 전달에 집중하는 순수한 랩 대결이 이루어진다. 독자들은 글에 포함된 링크를 통해 꼭 음악을 들어보기를 권한다.

[2] MC(Master of Ceremonies)의 역할은 단순히 랩(rap)을 하는 ‘래퍼(rapper)’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직접 가사를 쓰고 음악과 공연을 흐름을 주도한다는 점에서 프로듀서와도 같다. MC가 랩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모든 래퍼가 MC의 역할을 소화해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3] 이 앨범은 2007년 음악 매체 ‘롤링스톤(Rolling Stone) 인도네시아’가 선정한 ‘인도네시아 명반 150선(150 Greatest Indonesian Albums of All Time)’에도 이름을 올렸다.

[4] 힙합 콜렉티브 Impartairial이 2000년부터 2004년까지 다고 거리(Dago Street)에서 주말마다 열었던 쇼케이스 Hiphop Kakilima 또한 반둥에서 언더그라운드 힙합이 성장하고 발전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5] 해외에 많이 알려진 덕에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래퍼로 언급되기도 하지만, 정작 국내 힙합계와는 연결고리가 거의 없다. 2016년 유튜브에서 인기를 얻은 후에는 미국 캘리포니아로 건너가 88rising이라는 아시아계 기획사에 합류했다. 인도네시아 국내의 경향과는 달리 주로 영어로 랩을 하며, 해외에서 먼저 반응을 얻은 후 인도네시아 음악계에 다시 소개된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