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저자 제공
떠남의 시대를 사는 청년들
몇 년 전 카트만두에서 현지 조사를 하던 때였다. 한국행 고용허가제(EPS)를 통해 취업을 준비하던 한 20대 청년을 만났다. 그는 바그바자르에 있는 한국어 학원에 다니며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왜 한국에 가고 싶으냐고 묻자, 그는 잠시 웃으며 말했다. “돈도 벌고 기술도 배우고 싶어요. 나중에 네팔에 돌아와 사업도 하고 싶고요.” 처음에는 흔히 들을 수 있는 해외 취업 이야기처럼 들렸다.
그러나 이야기를 이어가자, 그의 관심은 단순한 해외 취업을 넘어 네팔 사회의 현실로 옮겨갔다. 그는 자신의 친구들 대부분이 이미 외국에 나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 일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 말레이시아.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말하며 지금 어디에서 일하고 있는지 설명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덧붙였다. “젊은 사람들이 다 외국에 가니까 네팔이 발전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 말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그 청년은 해외 이주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해외 이주가 일상화된 네팔 사회에 대해 양가적인 인식을 하고 있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떠나야 하지만, 모두가 떠나는 현실에 대해서는 아쉬움도 느끼고 있었다.

출처: 저자 제공
이와 비슷한 문제의식은 네팔 랩에서도 반복해서 나타난다. 오늘날 네팔의 랩, 즉 ‘네프합(Nephop)’은 단순한 음악 장르가 아니다. 그것은 해외 이주와 실업, 정치 불신과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서 살아가는 청년세대의 감정을 담아내는 하나의 사회적 언어가 되었다. 2026년 네팔 총선에서 래퍼 출신인 ‘발렌드라 샤’(Balendra Shah, 일명 발렌)가 총리로 선출되었을 때 많은 언론은 ‘래퍼 총리’라는 흥미로운 사건에 주목했다. 그러나 어쩌면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을 것이다. 왜 오늘날 네팔 청년들은 정치인의 언어보다 래퍼의 언어에서 자신의 현실을 더 많이 발견하게 되었을까?
랩은 어떻게 청년들의 언어가 되었는가?
사실 네팔은 힙합을 떠올리기 쉬운 나라는 아니다. 많은 사람에게 네팔은 히말라야 등반, 힌두 사원과 불교 성지, 카스트 사회, 농촌 공동체의 이미지로 기억된다. 필자 역시 네팔을 여러 차례 방문하며 국제 이주와 노동, 초국가적 가족을 연구해 왔지만, 처음에는 네팔 힙합 문화가 다소 낯설게 느껴졌다. 그러나 카트만두 거리의 젊은 세대를 관찰하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대학생이든 취업 준비생이든, 해외 이주를 준비하는 청년이든지 이들에게 TikTok 영상과 YouTube Shorts(쇼츠)는 일상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한국 아이돌 음악과 미국 힙합, 인도 영화음악, 일본 애니메이션이 같은 스마트폰 안에서 소비되고 있었다. 1990년대 이후 민주화와 도시화, 인터넷 확산, 해외 노동 이주 증가를 경험한 네팔 청년들에게 힙합은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그러나 네팔 청년들이 랩에 공감한 이유는 단순히 미국 문화가 멋있어 보였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랩은 짧고 직설적이다. 사랑과 이별을 노래하는 기존 대중가요와 달리 실업, 부패, 경찰, 빈곤, 정치인, 해외 이주 같은 문제를 직접 이야기할 수 있다. 무엇보다 랩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음악”이라는 인상을 준다. 네팔 청년들은 힙합이라는 형식을 빌려 자신들의 현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야마 붓다(Yama Buddha)’가 있었다.
야마 붓다와 떠나는 친구들
네팔 힙합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인물은 야마 붓다(Yama Buddha, 본명 아닐 아디카리, Anil Adhikari)이다. 그는 ‘네프합의 왕(King of Nephop)’으로 불리며 네팔 힙합의 대중화를 이끈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의 대표곡 ‘사티(Saathi, 친구)’는 지금도 네팔 청년들이 가장 사랑하는 랩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제목만 보면 단순한 우정 노래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성장과 상실에 관한 이야기이다.
노래는 어린 시절 친구들과 함께했던 시간을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친구들은 하나둘씩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어떤 친구는 마약에 빠지고, 어떤 친구는 세상을 떠나고, 어떤 친구는 생계를 위해 외국으로 떠난다. 야마 붓다는 혁명을 외치지 않는다. 정치인을 비난하지도 않는다. 대신 친구들의 흩어짐을 이야기한다. 바로 이 점에서 야마 붓다의 음악은 네팔 청년들의 경험과 만난다. 필자가 카트만두에서 만난 청년들도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친구들이 다 외국에 갔어요.” “제일 친한 친구는 일본에 있어요.” “형은 한국에 있고 사촌은 카타르에서 일해요.”
오늘날 네팔에서는 가족과 친구가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아가는 일이 매우 흔하다.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네팔의 해외송금 규모는 최근 수년 동안 국내총생산(GDP)의 2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World Bank 2024). 해외 이주는 더 이상 예외적인 선택이 아니라 청년기의 일반적인 생애 경로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일부 연구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이주문화’(culture of migration)라고 설명하기도 한다(de Haas 2010). 이런 맥락에서 야마 붓다의 ‘사티’는 단순한 우정 노래가 아니라, 국제 이주 시대를 살아가는 네팔 청년들의 집단적 상실감을 노래한 작품이다.
이와 비슷한 문제의식은 네팔 랩에서도 반복해서 나타난다. 오늘날 네팔의 랩, 즉 ‘네프합(Nephop)’은 단순한 음악 장르가 아니다. 그것은 해외 이주와 실업, 정치 불신과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서 살아가는 청년세대의 감정을 담아내는 하나의 사회적 언어가 되었다. 2026년 네팔 총선에서 래퍼 출신인 ‘발렌드라 샤’(Balendra Shah, 일명 발렌)가 총리로 선출되었을 때 많은 언론은 ‘래퍼 총리’라는 흥미로운 사건에 주목했다. 그러나 어쩌면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을 것이다. 왜 오늘날 네팔 청년들은 정치인의 언어보다 래퍼의 언어에서 자신의 현실을 더 많이 발견하게 되었을까?
야마 붓다가 사랑받는 이유는 뛰어난 랩 기술 때문만이 아니라, 청년들이 느끼고 있었지만 쉽게 말하지 못했던 감정을 음악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친구들의 떠남과 가족의 분산, 미래에 대한 불안과 성장의 상실감은 그의 음악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이다. 그는 그것을 정치 구호가 아니라 일상의 언어로 노래했다. 그래서 많은 네팔 청년은 그의 노래를 자신의 경험을 설명하는 언어로 받아들였다. 이 점에서 야마 붓다의 음악은 개인의 경험을 넘어 네팔 청년세대가 공유하는 사회적 경험을 담아낸다. 그의 노래는 한 래퍼의 성공담이 아니라 국제이주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세대의 집단적 기억에 가깝다.
분노를 말하기 시작한 세대 – VTEN
야마 붓다가 상실을 노래했다면, 그다음 세대의 래퍼들은 보다 직접적으로 분노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 있는 인물이 바로 ‘브이텐’(VTEN, 본명 사미르 기싱, Samir Ghising)이다. 오늘날 네팔 청년들에게 브이텐은 단순한 인기 래퍼가 아니다. 그는 청년세대의 좌절과 분노를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낸 래퍼 가운데 한 사람으로 평가된다. 브이텐의 음악은 야마 붓다와 상당히 다르다. 야마 붓다가 떠나는 친구들과 성장 과정의 상실을 이야기했다면, 브이텐은 현재의 불만과 분노를 정면으로 드러낸다. 그의 언어는 훨씬 거칠고 직설적이다. 때로는 욕설을 사용하고, 때로는 경찰과 정치인을 노골적으로 비판한다. 그 때문에 일부 언론과 보수적인 기성세대는 그를 문제적 인물로 보았다.
그러나 많은 청년은 바로 그 거침없는 표현 방식에서 자신의 현실을 발견했다. 필자가 카트만두에서 만난 한 대학생은 정치 이야기가 나오자 “정치인 자식이 아니면 성공하기 어려워요.”라고 말했다.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말의 사실 여부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사회적 인식이다. 그것은 많은 청년들이 네팔 사회가 공정하지 않다고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브이텐의 대표곡 ‘야트라’(Yatra, 여행)는 이러한 감정을 잘 보여준다. 노래 속 화자는 자신이 겪은 가난과 실패, 사회적 편견, 그리고 성공에 대한 열망을 이야기한다. 그는 자신을 영웅처럼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수많은 네팔 청년과 마찬가지로 불안정하고 흔들리는 존재로 자신을 그린다. 브이텐의 음악이 중요한 이유는 음악적 완성도 때문만이 아니다. 그는 네팔 청년들이 일상적으로 느끼는 좌절과 분노를 거침없이 드러냈다. 바로 이러한 점이 그를 네팔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청년 래퍼 가운데 한 명으로 만들었다. 브이텐의 음악은 단순한 저항의 노래가 아니었다. 그것은 기존 정치에 대한 청년세대의 불신과 좌절이 문화적으로 표현되는 방식을 보여주었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 Z세대 시위와 새로운 정치
2025년 네팔은 대규모 청년 시위를 경험했다. 시위는 정부의 부패 의혹과 기존 정당정치에 대한 불신 속에서 빠르게 확산되었다. 특히 많은 청년은 반복되는 정권 교체에도 일자리 부족과 경제적 불안정이 개선되지 않는 현실에 강한 좌절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위를 단지 특정 정치 사건에 대한 반응으로만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 배경에는 훨씬 더 구조적인 사회·경제적 문제가 자리하고 있었다. 청년실업과 정치 부패, 경제적 불안정, 그리고 해외 노동 이주에 크게 의존하는 경제구조는 오랜 기간 누적된 청년세대의 불만을 키워 왔다.

출처: Wikimedia Commons / 작가: हिमाल सुवेदी
(좌: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GenZ_protest_against_government_in_chitwan(1),_8_september_2025.jpg)
(우: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2025_Nepalese_Gen_Z_protesters_infront_of_Bharatpur_mahanagarpalika_office.jpg)
흥미로운 점은 시위 참가자들의 배경이 매우 다양했다는 사실이다. 네팔은 카스트와 민족, 언어, 지역 차이가 큰 사회이다. 브라만과 체트리 같은 상층 카스트뿐 아니라 달리트, 타망, 구룽, 라이, 림부, 마데시 등 서로 다른 카스트와 종족, 지역적 배경을 가진 청년들이 함께 시위에 참여했다. 그리고 이들의 정치적 이해관계도 서로 달랐다(김경학, 2023). 그러나 시위 현장에서는 서로 다른 배경의 청년들이 하나의 감정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것은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라는 감각이었다.
필자가 만난 또 다른 청년은 이렇게 말했다. “외국에 가지 않고 네팔에서 살 수 있는 사람은 공무원이나 대기업 직원 정도예요.” 물론 다소 과장된 표현일 수도 있다. 이 말이 모든 청년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당시 많은 청년이 공유하던 사회적 인식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많은 청년들이 느끼는 불평등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보여준다. 이러한 인식은 네팔 힙합에서도 반복적으로 표현된다. 야마 붓다가 친구들의 떠남을 노래하고, 브이텐이 분노를 노래했다면, 2025년 시위에 참여한 청년들은 그 감정을 거리에서 표현했다.
이러한 점에서 네팔 힙합은 시위를 만들어 낸 원인이라기보다, 이미 존재하던 청년세대의 사회적 경험과 문제의식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 문화적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오늘날 네팔 청년들은 정당 조직보다 SNS를 통해 더 활발하게 소통한다. TikTok, Facebook, YouTube, Instagram은 단순한 오락 플랫폼이 아니라 정치적 의견을 교환하는 공간이 되었다. 그리고 랩은 그러한 디지털 공간에서 가장 빠르고 강력하게 확산되는 청년문화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 점에서 네팔의 힙합 문화는 음악을 넘어 새로운 청년 정치가 형성되는 문화적 토대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이처럼 청년들의 좌절과 불신은 거리의 시위와 힙합이라는 문화적 표현을 거쳐 결국 제도 정치의 영역으로까지 이어졌다. 발렌 샤의 등장은 바로 이러한 변화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청년들은 왜 ‘발렌 샤’를 선택했는가

출처: Instagram(@balenshah) / Facebook(@balenOfficial)
그렇다면 왜 수많은 래퍼 가운데 발렌 샤(Balen Shah)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을까? 실제로 네팔에는 발렌보다 더 유명한 래퍼도 있었고, 더 급진적인 메시지를 전달한 래퍼도 있었다. 야마 붓다는 이미 전설적인 존재였고, 브이텐은 훨씬 더 대중적인 스타였다. 그러나 제도 정치로 진입한 인물은 발렌 샤였다.
발렌 샤가 주목받은 이유는 단순히 래퍼였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청년세대의 좌절과 불신을 이해하면서도 그것을 제도 정치의 언어로 연결할 수 있는 인물로 인식되었다. 그는 래퍼이면서도 토목공학을 전공한 전문직 출신이었다. 힙합 문화의 상징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동시에 도시 행정과 정책을 이야기할 수 있는 인물처럼 보였다. 다시 말해 그는 ‘반항적 래퍼’와 ‘제도 정치인’ 사이를 연결할 수 있었던 드문 인물이었다.
그의 대표곡 ‘발리단’(Balidan, 희생)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잘 보여준다. 노래에서 그는 정치인들이 국가를 위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며, 책임을 져야 할 때는 서로 등을 돌린다고 비판한다. 야마 붓다가 상실을 노래했고, 브이텐이 분노를 노래했다면, 발렌은 변화의 가능성을 노래했다. 그는 부패를 비판하면서도 국가를 바꾸고 싶다는 열망을 동시에 드러냈다. 바로 이러한 점이 발렌 샤를 다른 래퍼들과 구별해 주었다.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이 커질수록 청년들은 새로운 정치적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발렌 샤는 이러한 기대가 집중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많은 청년이 그에게 공감한 이유는 그가 래퍼였기 때문만이 아니라, 자신들의 좌절과 불신을 이해하면서도 그것을 제도 정치의 언어로 연결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발렌 샤의 정치적 성공을 힙합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여기에는 기존 정당정치에 대한 피로감, 도시 중산층 청년들의 성장, SNS 정치의 확대, 무소속 정치인에 대한 기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적어도 이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많은 청년이 기존 정치인의 언어보다 래퍼의 언어에서 자신의 현실을 더 많이 발견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바로 그 사실이 발렌 샤 현상의 출발점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발렌 샤는 기존 정치 엘리트의 경력을 갖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청년세대와 같은 문화와 언어를 공유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기존 정치인들과 뚜렷이 구별되었다.
여성들은 어디에 있는가?
네팔 힙합을 대표하는 이름들을 떠올려 보면 대부분 남성이다. 야마 붓다, VTEN, 발렌 샤 모두 젊은 남성들의 경험을 중심으로 노래했다. 그렇다면 여성들은 어디에 있을까. 이 질문은 여성 래퍼의 수를 묻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네팔 사회에서 여성들의 경험이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가를 묻는 질문이다.
이 질문을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필자가 연구해 온 네팔 여성 이주노동자들의 경험이 떠오른다. 필자가 연구한 한국의 네팔 여성 이주노동자들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들 여성은 한국에 와서 돈을 벌고 송금하면서 가족의 주요 생계 부양자가 되었다. 일부는 부모가 결정하던 문제를 자신이 결정하게 되었고, 일부는 자신의 이름으로 토지와 주택을 구입하기도 했다. 어떤 여성은 “예전에는 집안의 중요한 결정은 아버지나 오빠가 했지만, 이제는 내 의견을 먼저 묻는다”라고 이야기했다(김경학, 2024). 이러한 경험은 여성의 국제이주가 단순한 경제활동을 넘어 기존 젠더 질서를 재구성하는 과정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네팔 힙합은 이러한 여성들의 경험을 아직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네팔 힙합은 청년실업과 국제 이주, 부패와 정치 불신을 활발히 노래하고 있지만, 여성 이주노동자들의 경험이나 젠더 불평등의 문제는 상대적으로 적게 다루고 있다. 이는 앞으로 네팔 힙합이 더욱 확장될 수 있는 중요한 주제이기도 하다. 오늘날 네팔 사회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흐름 가운데 하나는 청년 남성의 해외 이주뿐 아니라 여성들의 이동과 경제적 독립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의 국제이주와 노동, 돌봄의 경험은 앞으로 네팔 힙합이 새롭게 담아낼 수 있는 중요한 사회적 주제라고 할 수 있다.
랩은 어떻게 청년들의 정치가 되었는가?
이제 다시 처음 만났던 카트만두의 청년들을 떠올려 보자. 그들은 한국에 가서 돈을 벌고 기술을 배운 뒤 언젠가 네팔로 돌아와 사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들의 이야기는 특별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나 평범했다. 오히려 그 평범함이 오늘날 네팔 청년 사회의 현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였다. 많은 청년이 해외 이주를 준비하고 있었고, 이미 많은 친구가 외국으로 떠난 상태였다. 그들은 정치인들을 신뢰하지 않았고, 자신들의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었다.
야마 붓다는 떠나는 친구들을 노래했다. 브이텐은 분노를 노래했다. 발렌 샤는 부패한 정치에 대한 불신과 변화의 가능성을 노래했다. 이들의 음악은 서로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같은 시대를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네팔의 사례는 오늘날 아시아 여러 나라의 청년문화와도 비교해 볼 수 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네팔 힙합의 가장 눈에 띄는 점은 국제 이주의 경험이 음악 속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는 점이다. 친구들이 외국으로 떠나고, 가족이 송금에 의존하며, 청년들 스스로도 해외 이주를 미래 전략으로 생각하는 현실은 네팔 힙합의 중요한 배경이 되고 있다.

출처: 저자 제공
가족이 송금에 의존하며, 청년들 스스로도 해외 이주를 미래 전략으로 생각하는 사회. 이러한 현실 속에서 랩은 단순한 음악을 넘어 하나의 사회적 언어가 되었다. 2026년 발렌 샤의 총리 취임은 그 과정에서 나타난 가장 극적인 장면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물론 랩이 총리를 만든 것은 아니다. 그리고 래퍼가 정치인이 되었다고 해서 청년들이 직면한 문제들이 곧바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발렌 샤 현상이 보여주는 상징적 의미는 분명하다. 그것은 네팔 청년들이 더 이상 기존 정치의 언어만으로 자신을 표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그들은 랩과 유튜브, 틱톡과 SNS를 통해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공유한다. 그리고 때로는 그 과정에서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을 만들어 낸다. 발렌 샤의 등장은 래퍼가 정치인이 된 사건이라기보다 청년들의 언어가 정치의 언어가 된 사건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 점에서 네팔 힙합은 단순한 음악 장르가 아니다. 그것은 국제 이주와 디지털 플랫폼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이 사회를 이해하고, 서로 연결되며, 자신의 미래를 상상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이러한 점에서 네팔 힙합은 단순한 대중음악의 한 장르가 아니라 국제이주 시대 네팔 청년들의 사회적 경험과 정치적 상상력을 읽어낼 수 있는 하나의 문화적 창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네팔 힙합을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음악 장르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이주와 청년실업, 디지털 플랫폼, 그리고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 속에서 살아가는 네팔 청년들의 삶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 소개
김경학(khkim@jnu.ac.kr)은
전남대학교 문화인류고고학과 명예교수이다. 인도 자와할랄 네루대학교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1995년~2025년까지 전남대학교 문화인류고고학과와 디아스포라 대학원 협동과정에서 이주와 디아스포라 등을 주제로 강의와 연구를 진행하였다. 전남대학교 글로벌디아스포라연구소장을 역임하고, 현재 남아시아 이주자와 구소련권 고려인 이주자에 대한 인류학적 현지 조사를 수행하고 있다.
참고문헌
김경학(2023). 『네팔의 국제 이주와 초국가적 가족』. 서울: 민속원.
김경학(2024). “국내 네팔 여성 노동 이주자의 임파워먼트 경험에 관한 연구” 『디아스포라연구』 18권 2호.
de Haas, Hein(2010). “The Internal Dynamics of Migration Processes: A Theoretical Inquiry.” Journal of Ethnic and Migration Studies 36(10): 1587–1617.
Kathmandu Post. 2017. “Rapper Yama Buddha Found Dead at His London-Based Apartment.” The Kathmandu Post, January 15.
Rose, Tricia. 1994. Black Noise: Rap Music and Black Culture in Contemporary America. Hanover: Wesleyan University Press.
World Bank. 2024. Personal Remittances, Received (% of GDP): Nepal. World Development Indicators. Washington, DC: World Ban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