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2월 28일 미국-이스라엘이 이란의 핵시설과 군사 목표물을 전격 공격한 이후 이어지고 있는 전쟁은 비록 휴전이 성사되었다고 하지만 언제 교전이 다시 벌어질지 모르고 호르무즈 해협은 여전히 통행이 어려운 상황이다. 전쟁 발발 두 달 반이 지난 현재 석유 가격이 급등하는 등 국제 에너지 위기가 심화된 것을 비롯하여 통상, 공급망의 어려움이 더욱 악화되어 국제경제의 주름살이 깊어지고 있다. 남아시아의 인도와 파키스탄도 전쟁의 여파에 직격탄을 맞아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세계 석유의 20% 이상이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서 인도, 파키스탄 모두 석유, LNG 가격이 급등하였고, 질소비료 생산에 핵심인 요소(urea)의 수송도 타격받으면서 비료 생산 급감으로 인한 농작물 수확량 하락이 현실화될 것이 예상되어 사회의 빈곤 계층은 더욱 심각한 피해를 입을 전망이다. 사우디, UAE 등 걸프 지역에는 약 900만 명의 인도인과 500만 명의 파키스탄인 노동자가 다양한 일에 종사하면서 받은 임금의 상당량을 본국에 송금하고 있다. 인도인들의 본국 송금액은 약 510억 달러에 달하는데, 이는 인도의 대미 무역 흑자 총액과 맞먹는 규모이다. 2025년 파키스탄의 전체 송금액 380억 달러 중 55%가 걸프 지역에서 오는데 이는 파키스탄의 연간 무역적자 규모보다 많은 양이다. 전쟁의 여파로 산업, 건설 활동이 중단, 지연되고 많은 인도, 파키스탄 노동자들이 안전을 위해 본국으로 향하면서 양국 모두 수십, 수백억 달러의 손실과 함께 본국으로 이주한 노동자들의 생계 보전을 위한 부담까지 짊어지게 되었다.
이렇게 인도, 파키스탄 모두 경제, 에너지 분야에서 큰 타격을 받아 전쟁의 조속한 종식과 에너지 통상이 정상화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런데 휴전을 비롯한 전쟁 관련 여러 외교적 노력에서 파키스탄의 입지는 상당히 강화된 반면, 인도의 지위는 주변부로 밀려나고 하락한 모양새다. 불과 1년여 전만 해도 인도는 QUAD, BRICS 등 성격이나 구성이 전혀 다른 기구에 모두 멤버로 있으면서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에게는 맹주로 군림하였다. 모디 정부는 경제, 군사, 외교 등 모든 분야에서 곧 강대국으로 도약할 야심찬 계획을 의욕적으로 추진하였다. 이에 반해 파키스탄은 미국과도 관계가 소원하였고 중국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우방국이 눈에 띄지 않았었다. 하지만 최근 1년간 무엇보다도 양국의 미국과의 관계가 크게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어 현재 양국의 비대칭적인 외교력 행사에 영향을 주었다.
트럼프 1기 때 지도자들 간에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었기에 트럼프 2기 출범에 대한 모디 총리의 기대가 컸었다. 그러나 관세와 인도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둘러싼 갈등이 지속되던 가운데 2025년 5월 발생했던 인도-파키스탄 간 격렬한 무력충돌이 종식되는 과정에서 전통적으로 인도-파키스탄 관계에서 제3자의 중재를 거부해 온 인도 정부가 트럼프의 본인 중재에 의한 휴전 성사 발표를 공식 부인하면서 트럼프의 심기를 건드렸다. 이에 미 정부는 어느 국가보다도 높은 50%의 관세를 인도에 부과함으로써 인도 국민들을 격분시켰다. 인도 정부는 미국의 압력으로 이란으로부터의 석유 수입도 중지하고, 중앙아시아로 이어지는 요충지이자 파키스탄이 중국의 지원으로 건설, 운용하는 과다르(Gwadar) 항구의 전략적 대항마로 공들여 왔던 이란의 차바하르(Chabahar) 항구 프로젝트도 포기했으나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얻은 것은 없게 되었다. 최근 발간된 미국의 국가안보전략(NSS), 국가방위전략(NDS)은 모두 중국에 대해 심각한 전략적 라이벌이라기보다는 경제 분야에서의 위협 정도로 기술하고, 인도가 공들여 온 인도·태평양 전략이나 QUAD에 대해서는 이 보고서에서도 그 이후에도 거의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아 2020년 갈완 계곡에서 중국군과 충돌하여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후 미국의 인태전략에 급속히 동화해 온 인도를 실망시켰다. 또한 올해 3월 인도 외교부의 후원으로 개최된 Raisina 회의에 참석한 미국의 국무부 부장관이 수십 년 전 중국의 경제성장에 도움을 줌으로써 중국이 미국의 라이벌로 성장하게 했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인도의 경제성장을 지원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여 인도 정부를 아연실색하게 하였다. 불과 수년 전만 해도 미국 정부가 중국을 전략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인도의 성장과 발전을 원한다고 했었기 때문에, 그리고 이러한 선언은 인도 정부의 강대국 반열에 당당히 들어서려는 원대한 계획에 찬물을 끼얹는 것으로 여겨져서 분노와 실망이 더욱 컸다. 비슷한 시기 인도 주최 다국적 해군 합동군사훈련에 참여하고 본국으로 돌아가던 이란 해군 함정을 미 잠수함이 격침하여 인도의 자존심을 자극하였다. 4월 말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 극우 MAGA 논평가가 불법이민자 문제를 논하면서 중국과 함께 싸잡아서 인도를 시궁창(hellhole)이라 지칭한 것을 그대로 게재하여 다시 한번 인도 국민들을 격분시켰다. 모디 총리는 여전히 미국과의 관계 증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인도 내 미국에 대한 반감이 워낙 심하고 미국의 인도에 대한 신뢰도 많이 줄어든 상황이다.
이에 반해 파키스탄은 중국과의 친분, 테러에 대한 모호한 정책으로 미국의 기대로부터 크게 멀어졌었으나 2021년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 시 180여 명의 사망자를 낸 카불 공항 폭탄 테러 용의자를 2025년 3월 체포해서 미국에 인도하는데 파키스탄이 적극 협조하였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치하하면서 관계 개선이 이루어졌다. 5월에 있었던 인도-파키스탄 무력충돌의 휴전이 성사될 때 인도 정부가 트럼프의 중재 역할을 부인했던 것과 달리 파키스탄 샤리프 총리는 트럼프에 감사 인사를 전하면서 트럼프를 노벨 평화상에 추천하겠다고 하여 그를 흡족하게 하였다. 이후 군부 실권자인 무니르 원수와 샤리프 총리는 두 차례나 백악관을 방문하여 긴밀히 양국 협력관계를 논하였다. 2026년 초에는 트럼프가 가자 전쟁 종식과 평화 정착을 위해 창설한 Board of Peace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또한 1월에는 트럼프와 가족이 공동 경영하는 World Liberty Financial의 위트코프 사장(트럼프의 절친이자 특별외교사절의 아들)과 파키스탄 재무장관이 이슬라마바드에서 양해각서를 체결할 때 무니르 원수가 여러 장관들을 대동하고 참석하여 트럼프의 환심을 샀다. 트럼프는 무니르를 ‘나의 최애 원수(my favorite field marshal)’라 부르며 전폭적인 신뢰를 보냈다. 이렇게 파키스탄 지도자와 트럼프 간에 친밀한 관계가 증폭되어, 1971년 미국과 중국 간 관계 개선의 물꼬를 트는데 파키스탄이 결정적 중재 역할을 했던 것처럼 이번 전쟁에서 파키스탄이 미국과 이란 간에 중재자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물론 파키스탄은 800km 이상의 국경을 공유하는 이란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여 무니르 원수와 샤리프 총리가 2025년에 테헤란을 방문하고 이란 지도자들을 이슬라마바드에 초청하기도 했을 정도로 신뢰를 쌓아왔다. 양국 지도자들과의 인간적 정분 외에 남아시아, 서아시아, 중앙아시아, 호르무즈 해협과 가까운 서인도양을 모두 연결하는 위치에 있다는 파키스탄의 지정학적 지위도 이번 외교 중재 역할을 가능하게 하는 데 한몫하였다.
파키스탄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미국과 이란 간 휴전을 중재하는 위치에 서게 된 것은 다년간의 외교적 노력에 기인한다. 그리고 파키스탄의 전략적 절박함도 강력한 외교적 노력을 추동하였다. 에너지와 비료 가격의 급상승은 이미 IMF 구제금융 하에 놓여있는 파키스탄의 경제를 더욱 어렵게 하였는데, 파키스탄 인구의 40%가 속해 있는 농업 분야의 타격이 특히 극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매년 7-80만 명이 일자리를 찾아 걸프 지역으로 진출하는 상황에서 전쟁으로 인해 진출은커녕 백사십만 명 정도가 본국으로 돌아오게 된다면 파키스탄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재정적 손실이 불가피하다. 이란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발루치스탄 지역은 이미 무장단체의 활동이 활발한 지역이라 이란 전쟁이 장기화된다면 분쟁의 낙수효과로 인한 불안정이 더욱 심화될 수 있다. 인구의 10-15%인 2천만 명이 넘는 인구가 시아 무슬림으로 추정되어 파키스탄은 이란 다음으로 시아 무슬림들이 많은 국가인데 이들도 이란의 시아 지도부를 정신적, 종교적 지도자로 모시기에 이번 참수작전은 큰 충격과 분노로 다가왔다. 이미 전국적 시위가 발생하여 미 영사관 앞에서의 발포를 포함, 21명 이상이 사망하여 전쟁의 종식은 파키스탄 정부에게 더욱 시급한 문제가 되었다. 또한 지난 9월 사우디 정부와 역사적인 방위조약을 맺었기에 전쟁이 장기화되어 이란의 사우디 공격이 지속된다면 파키스탄으로서는 선택하기 힘든 군사개입의 압박이 심해질 수 있다. 따라서 파키스탄 정부에게 미국-이란 간 휴전은 외교적 성과이자 절박한 국가적 과제이기도 하기에 이슬라마바드를 회담 장소로 적극 활용한 외교적 총력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인도의 모디 총리는 이란 전쟁 발발 불과 며칠 전 이스라엘을 방문하여 양국 관계를 특수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했을 정도로 미국에 공명하는 친이스라엘 정책을 펴 왔다. 이란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해왔으나 이스라엘과의 친분 때문에 이번 휴전 과정에서는 중재 역할에 명확한 한계가 있었다. 또한 이런 친이스라엘 정책은 대부분의 글로벌 사우스 국가에서 큰 반감을 일으켰다. 특히 인도가 Act East로 공들여 온 ASEAN 국가들과의 관계 유지도 만만치 않은 과제가 되면서 인도 특유의 전략적 자율성 외교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커졌다. 파키스탄의 경우 중동 지역에서의 장기간 물밑 작업, 미국 지도자들과의 개인적 친분 증대 노력 덕분에 미국의 무니르 원수가 미국의 트럼프, 위트코프, 그리고 이란의 이슬람 혁명 수비대 고위장교들과 전화 통화를 할 수 있는 지위를 확보하였고, 이를 적극 활용하여 양국 간 중재를 추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쟁의 향방이 여전히 불확실한 상황에서 다음 주 미-중 정상회담의 향배 등 여러 변수가 있어 인도, 파키스탄의 외교적 영향력이 어떤 식의 변화와 부침을 겪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저자 소개
김태형(tkim2002@ssu.ac.kr)
현) 숭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전) 한국국제정치학회 회장, 한국정치학회 연구위원장, 국방부 군비통제검증단 자문위원
<주요 저술>
“한국은 핵을 가질 수 있는가? 인도-파키스탄 사례로 본 가능성과 한계.” 『국방연구』 68(3), 2025.
“전략사령부 창설 어떻게 할 것인가? 인도와 파키스탄의 전략사령부 창설, 운용 사례에서 배우는 교훈과 함의.” 『국방연구』 67(3), 2024.
“글로벌 안정/불안정 역설의 심화: 인도-파키스탄 사례에서의 교훈과 과제.” 『국제정치논총』 64(1), 2024.
“인도의 ‘강대국’ 지향 외교와 힌두 민족주의 정책은 양립가능한가?” 『21세기 정치학회보』 34(1), 2024.
“북한은 파키스탄의 길을 가고 있는가: 북한과 파키스탄의 전술핵무기 역할과 핵지휘통제 비교.” 『국방연구』 66(2), 2023.
“미・중・러 핵트릴레마(nuclear trilemma)를 통해 본 글로벌 핵질서의 변화 전망.” 『국제정치논총』 63(2), 2023.
관련 자료
Ahmed, Munir and Castillo, E. E. (2026). “Why Pakistan has emerged as a mediator between US and Iran.” AP News, April 10.
https://apnews.com
Jan, Farah (2026). “Iran and the Indispensable Broker: How Pakistan Outmaneuvers India on the World Stage.” War on the Rocks, April 20.
Khan, Naisha (2026). “The Price of Strategic Autonomy: India and the Iran Conflict.” The Diplomat, April 9.
https://thediplomat.com
Kumar, Manoj (2026). “World Bank says South Asia growth to slow to 6.3% in 2026 amid Middle East conflict.” Reuters, April 8.
https://www.reuter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