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山의 『징비록』 읽기 -‘자율적’ 民堡의 구상-
『조선시대사학보』 115호, 2025년
저자: 김호(아시아연구소)
정약용의 ‘민보’ 구상은 인간 본성에 기반한 자율적 지역 방어 제도로 이해될 수 있을까?
이 논문은 다산 정약용의 「民堡議」를 백성을 통제하려는 국가의 기만술로 보던 기존의 시각을 비판하고,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설계된 ‘자율적’ 지역 방어 구상으로 재해석하였다. 다산은 병농일치의 이상을 유지하는 동시에 사실상 유명무실한 관군의 상황을 고려하여, 백성들의 ‘이익’에 충실한 자율적 지역방어론을 구상했다. 백성들이 좋아하여 저절로 따를만한 대책이 아니라면, 사실상 전란 시기에 전연 쓸모가 없었다. 다산의 경세론이 흥미로운 이유는 그가 ‘인간 본성에 기초한 제도를 설계’했기 때문이다. 다론 아제모을루는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제도’ 기획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개인이 자기 노력의 성과를 차지할 수 있는 환경(자발성과 소유권)이야말로 번영의 전제 조건이라는 주장이다. 다산은 이를 ‘自食其功’으로 명명한 바 있다. 다산이 지역방어를 관보가 아닌 ‘민보’로 구상했던 이유이다. 백성들은 전쟁이 나면 자신부터 살기를 궁리하고, 가족들의 안전을 구하기 마련이었다. 만일 산 위에 보루를 설치하고 곡식을 준비하여 적병을 방어할 수 있도록 사전에 준비한다면,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지키려고 고향을 떠나 도망하지 않을 터였다. 다산은 서애의 징비록을 참고하고 인간 본성에 대한 현실적 각성에 기초해, 백성들의 이익에 가장 부합하는 방식으로 ‘민보’를 구상했다. 다산은 천지의 조화보다 인화가 중요하다는 성왕들의 주장을 자신의 방식대로 ‘제도화’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