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포로·유민의 당 이주와 정착-당의 對고구려전 징발 지역과 고구려 포로·유민 안치 지역의 상관관계-

이 글은 고구려 포로와 유민이 당의 주요 군사 징발 지역과 겹치는 곳에 배치되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는 단순한 개간이나 방어 목적뿐 아니라, 전쟁으로 피폐해진 지역의 인력 보충과 군사 운영을 위한 전략이었다. 결국 당은 포로와 유민을 활용해 군사·경제적 필요를 동시에 충족시키려 했음을 보여준다.

고구려 포로·유민의 당 이주와 정착당의 고구려전 징발 지역과 고구려 포로·유민 안치 지역의 상관관계

『한국고대사연구』 120호, 2025년

저자: 김수진(아시아연구소)

당나라가 고구려 포로와 유민을 특정 지역에 강제 이주시킨 목적은 무엇인가?

이주와 정착은 인간의 자유의지가 실현된 결과로 보이지만, 전쟁이라는 요소가 개입되면 개인의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보다는 강제 이주와 정착으로 전환된다고 할 수있다. 고구려 포로와 유민이 안치된 지역으로 隴右道, 江南道, 淮南道, 嶺南道, 山南道, 河南道 등을 기록하였는데, 이에 대하여 대체로 토번 방어나 빈 땅을 채우고 개간하기 위해서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고구려 포로와 유민을 안치했다고 기록된 지역은 당이 對고구려전을 수행하기 위한 주요 징발 지역으로, 상관관계를 설정할 수 있다. 당은 645년 고구려 포로의 안치와 운용 방식을 668년 고구려 멸망 이후 유민에게도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669년 강제 사민된 고구려 유민이 안치된 지역은 강남, 회남 및 영남, 산남, 그리고 양주 이서의 농우도에 속하는 여러 주였다. 또한 왕준의 상소 내용을 통해 서주와 청주 등 하남도에도 안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지역들은 태종 대 張亮이 수군을 징발한 강남, 회남, 영남, 산남, 그리고 李勣이 降胡를 징발한 농우도의 난주, 하주, 蕭銳, 崔仁師가 군량을 수송한 하남도의 여러 주와 거의 중첩되는 공간이었다. 당은 장기간의 징발로 피폐해진 지역이나 변경에 가까운 지역에 고구려 유민을 안치하여 부족한 인력을 수급하고 대체하며 방비하고 민심을 안무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645년의 고구려 포로와 668년의 유민 사이에는 20여 년의 시차가 있었지만 당의 주요 징발 지역과 포로·유민의 안치 지역은 상관관계를 갖고 비슷한 궤적을 그렸다.

자세히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