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성과 민주적 감시의 긴장: 2026년 일본 총선이 드러낸 제도적 함의

2026년 총선에서 나타난 자민당의 압승은 단순한 보수화의 결과라기보다, 총리의 해산권과 소선거구 중심 선거제도가 결합된 제도적 구조 속에서 형성된 정치적 산물이다. 이러한 구조는 의회 다수와 민의 사이의 괴리를 확대시키며, 정책 결정 과정에서 민주적 대표성과 통제의 문제를 다시 제기한다.

손석의(서울대학교)
2026년 2월 18일, 일본 의회에서 내각총리대신 지명을 받은 다카이치 사나에 의원이 축하를 받고 있다. 출처: 일본 수상관저

 

“자민당 지배.” 전후 일본의 의회민주주의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이보다 더 간결하고 정확한 표현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1955년 창당 이후 일본의 자유민주당은 약 11개월간의 비자민 연립정권기(1993~1994)와 민주당 정권기(2009~2012)라는 불과 4년 남짓의 기간을 제외하고는 줄곧 집권 여당의 지위를 유지해 왔다. 그사이 수많은 위기에 직면했음에도 불구하고, 자민당은 마치 카멜레온처럼 탁월한 적응 능력을 발휘하며 위기를 극복해 왔다.

사회당과의 대립 구도를 축으로 형성되었던 일당우위체제(1955~1993)가 냉전의 종식과 경제위기라는 미증유의 상황 앞에서 붕괴되었을 때, 전후 고도경제성장 체제를 기반으로 한 자민당 지배 역시 필연적으로 종언을 맞을 것이라 여겨졌다. 그러나 자민당은 정적이었던 사회당과 손을 잡음으로써 이 위기를 돌파하였다. 이후 사회당이 쇠퇴하여 연립 파트너로서의 가치가 사실상 소멸하자, 이번에는 그간 종교정당이라 비판해 오던 공명당과 연립을 구성하여 26년에 걸친 안정적 연정 기반을 구축하였다. 2025년 10월, 보수화의 제동이 멈추지 않던 자민당이 이른바 ‘아베의 후계자’로 불리던 다카이치 사나에를 총재로 선출하자, 공명당은 결국 연립 탈퇴를 선언한다. 이 ‘최대의 위기’ 상황에서도 자민당은 여당 진입 의지가 노골적으로 드러났던 일본유신회를 신속히 포섭하며 다수파 형성에 어떠한 주저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이처럼 서술하면 지나치게 단순한 결과론으로 비칠 수 있다. 자민당의 강점은 적응 능력에 있다고 흔히 평가되듯, 오랜 집권 경험을 통해 축적된 노하우에 기반하여 당 조직은 내외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위기에 대해 대부분 그때그때 현실적인 해법을 찾아왔다. 그러나 이는 장기적 관점에서 국익을 내다본 치밀한 전략의 성과라기보다는, 제한된 합리성의 조건 속에서 권력 유지를 위한 최선의 선택을 추구해 온, 이른바 기회구조가 만들어낸 제도적 산물이라는 측면이 크다. 또한, 이러한 자민당의 장기 집권은 단순한 정치적 우위의 문제가 아니라, 해산권과 선거제도가 결합된 제도적 구조 속에서 형성된 권력 재생산의 양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2026년 2월 8일 실시된 제51회 총선거에서 전체 465석 가운데 자민당은 315석을 획득하여 사상 최대 의석수를 기록하였다. 제1야당이었던 입헌민주당과 자민당과의 협력 관계를 해소한 직후의 공명당이 합당하여 결성된 중도개혁연합은 49석에 그치는 참패를 기록하였다. 2024년 선거에서 입헌민주당과 공명당이 각각 148석과 24석, 합계 172석을 차지했던 점을 고려하면, 최대 야당 세력이 단순 계산으로도 3분의 1 이하로 급감한 셈이다. 8석을 보유하던 일본공산당은 비례대표 득표가 25% 감소하여 4석에 머물렀다. 반면, 외국인 배제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운 참정당은 비례대표 득표를 두 배로 늘리며 15석을 확보하였다. 강경 우파 정당인 일본유신회는 득표수는 감소했으나 36석을 획득하여 세력 유지에 성공하였다.

이러한 결과는 일본 정치에서 기존 리버럴 세력의 쇠퇴와 정당 및 유권자의 보수화·우경화를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하기에 충분하다. 동시에 선거제도의 구조적 문제 역시 지적될 필요가 있다. 소선거구에서 7석에 그친 중도개혁연합의 지역구 득표율은 21.6%였다. 반면 일본유신회는 6.6%의 득표율로 20석을 얻었고, 자민당은 49.1%의 득표로 248석을 차지하였다. 현재 중의원 선거제도는 전체 465석 중 약 62%에 해당하는 289석을 소선거구에서 선출한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 야당 세력의 분열과 경쟁이 심화되면서 1인을 선출하는 소선거구에서 후보 난립이 상시화되었고, 표의 분산이 대표성을 훼손하는 심각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도 소선거구에 1,119명이 입후보하여, 선거구당 평균 3.9명이 경쟁하는 양상을 보였다. 자민당이 49%의 득표율로 85.8%에 달하는 의석 점유율을 기록한 것은, 전국적으로 통일된 야당 단일 후보가 사실상 부재했던 데 기인한다.

야당 후보 난립의 배경에는 중복입후보 제도가 있다. 소선거구에서 낙선하더라도 석패율에 따라 비례대표에서 ‘부활 당선’이 가능하기 때문에, 정당은 승산이 낮은 지역구에도 후보를 공천할 유인을 갖게 된다. 더불어 참의원 선거와 지방선거가 대선거구제를 채택하는 경우가 많아 소수 정당도 의석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이 조성되어 있어, 전국 및 지방 차원에서 정당 통합이 크게 제약되는 현실도 존재한다.

그리고 이번 자민당의 압승을 가능하게 한 핵심적 제도 요인으로는 총리의 중의원 해산권을 들 수 있다. 여러 언론과 전문가들은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다카이치 총리에 대한 높은 지지율이 기습적 중의원 해산이라는 전략적 선택을 가능하게 했다고 분석한다. 중의원의 임기는 4년이지만, 일본국 헌법하에서 임기 만료에 따른 총선거가 실시된 사례는 1976년 단 한 차례뿐이다. 2009년 당시 총리였던 아소 다로는 임기 만료를 두 달 앞둔 시점에서의 ‘궁지 해산’ 이후 민주당에 정권을 내주었다. 해산 시점을 오판한 것이 패인의 원인이었다고 평가될 만큼, 중의원 해산의 타이밍은 전략적으로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총리가 아무런 제약 없이 언제든지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 실시 시점을 결정할 수 있는 제도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해산권은 그 시점의 여론을 의회에 반영할 수 있고, 정책에 대한 신임을 확보하여 정권의 정당성을 강화하며 장기 집권을 도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 폐해 역시 빈번히 지적되고 있다. 정권이나 총리의 지지율이 높은 시점, 즉 집권 여당에 유리한 시기에 정권 기반을 강화할 수 있어 여당에 압도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할 뿐 아니라, 고이즈미 총리의 ‘우정(郵政)해산’에서 보았듯 특정 단일 이슈에 정책 논쟁이 집중됨으로써 다양한 정책과 국정 과제에 대한 정당 간 치밀한 정책 경쟁이 간과될 위험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유권자가 정권의 정책 선택을 감시하고 제약할 수 있는가라는 민주주의의 근본적 기능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그 대표적 사례가 2015년 제2차 아베 정권의 평화안보법제 제정이다. ‘적극적 평화주의’를 전면에 내세워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사실상 가능하게 한 이 법안은, “개별적 자위권에 기초한 방위를 위한 최소한의 자위 행동은 헌법이 부정하지 않는다”라는 기존의 소극적 방위 전략에서의 중대한 전환을 의미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선거를 통한 유권자의 직접적 심판 대상이 되지는 않았다.

안보 문제는 전후 ‘평화국가’를 표방해 온 일본 여론을 양분해 온 핵심 쟁점이다. 이를 민주적 절차 속에서 유권자를 설득하여 해결하는 것은 사실상 쉽지 않았을 것이다. 급변하는 지역 정세와 미일동맹의 변화를 고려할 때, 강력한 집권 여당의 의사결정이 때로는 불가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적 한계에 의한 비대칭성의 재연은 단순히 의석 배분의 왜곡에 그치지 않고, 중대한 정책 결정 과정에서 유권자의 통제 가능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 문제이다. 아사히신문과 도쿄대학 다니구치 연구실의 조사에 따르면, 최근 선거 결과 중의원 의원의 93%가 헌법 개정에 찬성하는 입장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80%는 자위대의 헌법 명기에도 찬성하고 있다. 반면, 매년 실시되는 NHK 여론조사에 따르면 2025년 기준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라는 응답은 39%, “필요 없다”는 17%, “어느 쪽도 아니다”는 39%로 나타났다. 헌법 제9조(이른바 평화조항)에 대해서는 “개정이 필요하다” 34%, “필요 없다” 28%, “어느 쪽도 아니다” 33%로 집계되었다. 개헌 필요성에 대한 여론은 점진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나, 국회의원 내 ‘개헌파’ 증가 속도와는 현저한 괴리를 보이고 있다.

다카이치 정권, 혹은 이후의 자민당 정권이 모든 정치적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미 형해화되었다는 평가를 받는 헌법 개정에 나설지는 미지수이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이번 선거가 보여주듯, 냉정하고 때로는 답답할 만큼 점진적이었던 일본의 정책결정 구조가 민의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채, 혹은 편향된 민의에만 반응하는 방식으로 극단적 선택을 할 여지가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총리의 해산권과 선거제도와 같은 많은 제도적·구조적 요소가 맞물려 있으며, 새로운 시대의 일본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새로운 시각에서의 분석이 필요한 시점이다.

저자 소개

손석의(alfasomega@snu.ac.kr)

현)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조교수

전)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주요논문>

“양분화하는 오사카 지방정치: 대립과 포섭의 이중 구조.” 『일본비평』 33, 2025.

“Between Appeasement and Accommodation: Kōmeitō’s Policy Influence under Second Abe Administration.” Journal of East Asian Studies 24(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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