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중앙아시아의 국가들은 스스로 역내 질서를 조정하고 형성하는 능동적 지역 행위자로서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한 해 동안 국경 분쟁의 제도적 봉합에서부터 외교적 다변화, 초국가적 협력 구도 형성, 그리고 정권 안정을 위한 제도적 재편에 이르기까지, 지역 질서의 재구축이 적극적으로 시도되었다. 이는 ‘강대국들 사이의 완충지대’라는 중앙아시아의 지정학적 중간자의 정체성이 보다 주체적인 행위자의 그것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다음 다섯 가지 2025년의 핵심 이슈를 통해 이러한 전환을 조망한다.
- Astana 2025: 중국–중앙아시아 정상회의
2025년 6월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열린 “제2차 중국–중앙아시아 정상회의(Astana 2025)”는 중국과 중앙아시아가 다른 강대국 없이 양측의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분기점이었다. 정상들은 ‘영원한 선린·우호·협력’을 강조하는 선언과 함께 경제, 물류, 에너지, 교육 협력을 포괄하는 협력 틀을 구체화했다.
이번 ASTANA 2005는 일대일로(BRI) 프로젝트의 연장이 아니라, “중국 + C5” 체제로 중앙아시아 5개국을 하나의 지역 단위로 묶는 중국 주도의 지역 협력 제도화 시도로 해석된다. 즉, 중국은 단순한 인프라 투자국을 넘어, 중앙아시아에서 지역 형성의 규범을 제시하고 그것을 현실화하는 제도, 인프라를 제공하는 핵심 행위자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중앙아시아에서 점진적으로 형성되고 있는 지역 안보 및 협력 레짐 논의와도 맞닿아 있다. 기존 연구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외부 강대국의 압력 속에서도 점차 공동 규범과 협력 메커니즘을 발전시키고 있음을 지적해 왔다 (Jordanova, 2024). Astana 2025는 이러한 경향이 외교적 수사 차원을 넘어 제도적 틀로 가시화된 사례라 할 수 있다.
- 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 국경 합의
2025년 3월,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은 수십 년간 이어져 온 국경 분쟁을 공식적으로 마무리하는 합의에 도달했다. 이에 우즈베키스탄까지 포함한 3국 접경점 합의가 체결되면서,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불안정했던 지역 중 하나인 페르가나 계곡의 충돌 가능성은 제도적으로 크게 낮아졌다. (김민규, 2025)
이 합의는 단순히 국경선이 획정된 것을 넘어서서 무력 충돌과 국지적 분쟁의 반복으로 점철되었던 국경 문제가 행정·외교적 협상과 제도의 영역으로 이동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안보를 외부 세력에 의존하지 않고, 역내 차원의 문제 해결 능력을 찾아가고 있음을 시사한다.
- EU-중앙아시아 첫 정상회의
2025년 4월 사마르칸트에서 열린 EU–중앙아시아 첫 정상회의는 중앙아시아의 외교 전략이 본격적으로 다변화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EU는 중앙아시아를 단순한 에너지·원자재 공급처를 넘어선, 지정학적 연결, 기후·에너지 전환, 디지털 협력의 핵심 파트너로 규정했다.
이 회의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러시아, 중국이라는 양 강대국 사이의 균형잡기라는 구도에서 탈피하여 다극적 외교 전략을 적극적으로 추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인권과 거버넌스와 같은 가치 기반 의제 역시 정상회의의 의제 일부로 포함되면서, 실용적 이해관계와 보다 자유주의적인 규범적 요소가 동시에 존재하는 외교협력의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중앙아시아가 러시아-중국 중심의 권위주의 정권 생존 전략이라는 익숙한 외교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벡터의 지역 질서 구상을 스스로 재설계하는 움직임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 두샨베 러시아–중앙아시아 정상회의
2025년 10월 두샨베에서 열린 “러시아–중앙아시아 정상회의”는 러시아가 여전히 중앙아시아에서 핵심적 안보·경제 행위자임을 재확인하려는 시도였다. 회의에서는 물류 회랑, 이주 관리, 공동 안보 협력이 주요 의제로 논의되었다. (Reuters, 2025)
그러나 이 회의는 러시아의 영향력이 과거처럼 압도적으로 작동하지 않음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여전히 러시아와의 관계를 중시하지만, 중국, EU, 터키, 중동 국가들과의 협력을 병행하고 있다. 이는 중앙아시아 질서가 단일한 외부 패권에 의해 규정되기보다, 다층적·다극적 구조로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 카자흐스탄 얼굴가림 금지법
2025년 6월, 카자흐스탄은 공공장소에서 얼굴을 가리는 복장을 금지하는 법률(On Prevention of Offenses)을 도입했다 (Eurasianet, 2025). 해당 법안은 이슬람을 명시적으로 언급하거나 특정 종교를 규제 대상으로 지목하지 않으며, 정부는 이를 범죄 예방과 치안 강화를 위한 조치로 설명하고 있다. 유사한 형태의 법률은 이미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에서도 도입된 바 있다.
이러한 법안들은 표면적으로는 공공 안전과 질서 유지를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세속주의 강화와 민족국가 정체성 담론이 결합된 정체성 정치의 제도화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 나아가 이는 기존 권위주의 정권이 사회적 규범과 문화적 기준을 통해 정치적 정당성을 재확인하고 강화하는 규범적·문화적 통치 전략의 일환으로 분석될 수 있다.
이러한 조치는 중앙아시아 전반에서 관찰되는 사회 통제 강화와 국가 정체성 재구성의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경제적 개방과 대외 협력이 확대되는 한편, 국가는 사회적 경계를 보다 명확히 설정하고 사회 전반에 대한 국가의 통제력을 제도적으로 공고히 하려는 경향을 동시에 보이고 있다.
저자 소개
김선희(shkim_politics_rus@snu.ac.kr)
현)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 고려대학교 국제학부 강사
전) 동아시아연구원(EAI) 선임연구원, William & Mary 정치학과 초빙조교수, Columbia University, Harriman Institute 박사후연구원
<주요 저서와 논문>
“’우리’가 된 난민: 우크라이나 난민과 폴란드 극우 정치의 역설” 『슬라브학보』 40(1), 2025.
최신 관련 자료
김민규. 2025. 「중앙아 3국, 국경 획정 합의…소련 해체 이후 분쟁 종식」. 아시아투데이, 4월 1일.
Eurasianet. (2025). Muslims in Kazakhstan face ban on facial coverings in public places, Eurasianet, 1 July 2025.
Jordanova, A. (2024). Regional security regime emerging in Central Asia. Central Asian Affairs, 11(3), 1–23.
Reuters. (2025). Putin urges Central Asian states to step up trade with Russia at summit in Dushanbe. Reuters, 9 October 2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