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촉발된 가자 전쟁은 여전히 종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번 전쟁은 단순히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대립을 넘어, 시아파 프록시 세력과 이란까지 가세한 이스라엘–이란 대립 구도로 확장되었다. 그 결과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를 둘러싼 국지적 충돌을 넘어 중동 전역의 새로운 대립 구도로 변모하였다. 특히 지난 6월 발생한 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무력 충돌과 이에 따른 미국의 개입은 전운을 한층 고조시켰다. 대결 구도가 복잡해짐에 따라 국제사회의 관심은 이제 하마스-이스라엘 갈등을 넘어, 이란과 미국의 대응에 집중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전쟁의 발화점이었던 가자 지구는 점차 국제사회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형국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여전히 하마스 소탕과 인질 구출을 명분으로 가자 지구에 대한 공격을 지속하고 있다. 갈등이 확대되고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장기간 누적된 복합적 전쟁의 피해는 고스란히 무고한 가자 지구 주민들에게 전가되고 있다.

가자 지구는 이번 가자 전쟁이 발발하기 전부터 매우 열악한 상황이었다. 가자 지구는 지중해 동부 해안에 위치한 좁고 긴 땅으로 북쪽과 동쪽은 이스라엘, 남쪽은 이집트, 서쪽은 지중해와 접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지역 중 하나이다. 하지만 2006년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무슬림형제단에 기반한 하마스가 승리하였고 이후 하마스가 실질적으로 가자 지구를 통치해오고 있다. 미국, EU, 이스라엘 등은 하마스를 테러 조직으로 지정하였고 2007년 하마스가 가자 지구를 본격적으로 장악하자 하마스 통제를 명분으로 이스라엘과 이집트는 가자 지구를 봉쇄하기 시작했다. 이번 가자 전쟁 발발 이전에도 가자 지구는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지속되는 대립 속에서 봉쇄 수위가 강화되면서 경제적 상황이 이미 최악으로 치달은 상황이었다. 즉 “가자 지구는 하늘만 뚫린 감옥이다”라고 묘사될 만큼, 가자 지구에는 주민들이 일상 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운 척박한 환경이 이어져 왔다. 그리고 오랜 기간 지속된 가자 지구에 대한 봉쇄와 압박은 어쩌면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무차별적인 이스라엘 공격 감행을 촉발하게 된 요인 중 하나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가 전례 없는 수준으로 알아크사 홍수 작전을 개시하여 이스라엘을 공격하였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이스라엘은 철의 검 작전을 펼치며 하마스 제거와 인질 석방을 이유로 가자 지구를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는 가자 지구 주민들에게 가자 지구로부터 피난을 떠날 것을 명령하였으나, 수년간 봉쇄가 이어져 왔고 공격이 지속되는 상황 속에서 주민들의 대피는 쉽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하마스 군 시설과 민간인 주거 지역이 혼재되어 있다는 이유로 민간인 거주 지역에 대한 공격을 단행했다. 그 결과, 병원, 학교, 난민 캠프 등도 폭격의 대상이 되었으며 수많은 사상자와 이재민이 발생했다. 그리고 가자 지구에 대한 봉쇄를 더욱 강화하여 전기, 연료, 식수, 식량 공급이 차단되었다. 특히, 이스라엘군은 하마스가 병원을 군사 거점으로 활용했다고 주장하면서 병원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다. 이로 인해 발생한 민간인 피해로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대결 격화 속 피해는 무고한 가자 지구의 시민들이 고스란히 입었다. 이번 전쟁 이전에도 절박한 삶을 살아왔던 가자 지구의 시민들은 이제는 기근이라는 생명의 위협 앞에 놓이게 되었다. 9월 5일 가자 지구 보건부는 2023년 전쟁이 시작된 이후 64,231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어린이 131명을 포함한 370명이 최근 몇 주 동안 심각한 식량 부족으로 인한 영양실조와 기아로 사망하였다고 밝혔다. 이에 더해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식량 위기 분석체계인 통합식량안보단계분류(IPC)는 지난 8월 15일 기준 가자 지구에 식량 위기 최고 단계인 기근이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IPC는 가자 지구에 50만 명 넘는 사람들이 기근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IPC는 9월 말까지 가자 지구 전역에서 64만 명 이상이 IPC 5단계(재앙적 수준)의 식량 위기에 직면할 것이며 114만 명이 4단계(긴급), 39만 6천 명이 3단계 상황에 놓일 것이라고 추정하였다.
통합식량안보단계분류(IPC)는 가자 지구의 기근이 심각해진 주요 원인으로 지속적인 분쟁, 강제 이주, 인도적 지원 접근 제한, 식량 체제의 붕괴를 지적하였다. 특히 지난 3월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휴전 종료 이후 이스라엘의 공격이 강화되면서 7월 한 달에만 약 3,700명이 사망하고 1만 4천 명이 부상을 입었다. 또한 3월 중순 이후 80만 명이 넘는 주민들이 강제로 이주하였고, 필수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도 크게 제한되었다. 이와 동시에 인도적·상업적 식량 공급이 사실상 완전히 중단되었다. 7월 기준 인도적 식량 지원의 단 13%만이 목표 지점에 도달했으며, 식량 지원을 받은 가구는 전체의 5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들이 수령한 배급량 역시 평균 6일 치에 불과했다. 현금 부족과 물가 폭등으로 다수의 가정은 기본적인 식품조차 구매할 수 없게 되었고, 밀가루 가격은 2월 말 대비 무려 3,400%나 상승했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7월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성인들은 일주일에 평균 4일 정도 끼니를 거르며 자녀에게 음식을 양보한다고 답했다. 또한 응답자 3분의 1은 잔해 속에서 음식을 찾는다고 대답하였다.
영양 상태는 급격히 악화되어, 급성 영양실조 발생률은 5월 이후 세 배로 증가하였다. 광범위한 영양실조와 영양 결핍, 의료 접근 제한, 열악한 물과 위생 환경, 아동 질환이 맞물리면서 기아 상황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사망 패턴이 가자 지구에서 재현되고 있다. 또한 2025년 8월 13일 기준, 가자 지구의 36개 병원 중 18개만이 부분적으로 가동 중이며 1차 진료소의 39%만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이는 앞으로 가자 지구 주민들의 보건 상태가 더욱 심각하게 악화될 것임을 예고한다.
IPC의 가자 지구 기근 선언 이후 국제사회의 비난과 호소가 잇따랐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기근을 “인간이 만든 재앙, 도덕적 고발, 인류 자체의 실패”라고 호소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이스라엘이 국제법에 따라 식량과 의료품이 가자 지구에 들어오도록 보장해야 하는 “명백한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 내 대표적 인권단체인 벳셀렘은 가자 지구에서 나타난 기근 사태를 우발적 결과가 아닌 이스라엘 정부가 의도적으로 설계한 정책의 결과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이 단체는 이스라엘 가자 지구 식량 반입량을 계산해 살아는 있으되 극한의 굶주림 속에서 생활하도록 의도적으로 만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정확한 근거 없이 하마스가 식량을 빼돌린다고 주장하거나 유엔의 배급 실패를 탓하며 가자 지구의 기근의 원인이 이스라엘에 있다는 비난을 부인하였다.
가자 지구의 기근이 누구의 탓인지 공방을 벌이는 것은 최악의 인도주의 위기에 직면한 가자 지구 주민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늘만 열린 감옥에서 기근이라는 생존의 위협을 직접 겪고 있는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책임의 주체가 아니라 당장의 삶을 지키는 일이다. 분명한 것은, 가자 지구 주민들의 삶을 외면한 채 각자의 정치적 이해만을 추구해 온 인간의 탐욕이 오늘의 비극을 낳았다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비극적 상황 속에서 세상에 대한 가자 지구 주민들의 절망과 분노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는 점이다. 희망을 잃은 사람들의 마음에는 불신과 적개심이 쌓이고, 그것은 단순히 개인적 상실감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이 절망은 결국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되어, 또 다른 비극을 낳는 악순환을 반복할 위험이 크다. 지금 가자 지구에서 무너지고 있는 것은 인간 존엄성 만이 아니다. 미래의 평화 가능성도 함께 상실되고 있다.
저자 소개
안소연(tangsi@snu.ac.kr)
현)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서아시아센터 공동연구원, 한국외국어대학교 아랍어과 강사
전) 한국석유공사 근무
<주요 저서와 논문>
“외교 정책의 새로운 변수로서 리더십: 트럼프 정부와 걸프 국가 간 관계 향방 고찰.” 『중동연구』 44(1), 2025.
“The shifting dynamics of amity and enmity in the Middle East: analysing the 2023 Israel-Hamas war through the framework of regional security complex theory.” Asian Journal of Political Science, 2025.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나타난 카타르와 사우디아라비아의 프로파간다 경쟁: 알자지라와 알아라비야 보도 양상 비교를 중심으로.” 『중동연구』 43(1), 2024.
“Trans-regional Minilateralism: Connecting the Middle East and Indo–Pacific in the Struggle to Reshape the Political Order.” The Korean Journal of Defense Analysis, 2024.
“요르단 선거 과정을 통해 살펴본 시민사회의 역동성.” 『아시아리뷰』 14(3), 2024.
<최신관련자료>
B’Tselem (2025). “Manufacturing Famine: Israel is Committing the War Crime of Starvation in the Gaza Strip.” (accessed 2025, Sep 25)
https://www.btselem.org
Graham-Harrison, Emma (2025). “The mathematics of starvation: how Israel caused a famine in Gaza.” The Guardian, July 31. (accessed 2025, Sep 25)
https://www.theguardian.com
IPC (2025). “GAZA STRIP: Famine confirmed in Gaza Governorate, projected to expand.” (accessed 2025, Sep 25)
https://www.ipcinfo.org
United Nation (2025). “The descent into ‘a massive famine’ in Gaza has begun, relief agencies warn.” (accessed 2025, Sep 25)
https://news.u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