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대홍수, 기나긴 재난의 시작: 기후·개발·관료 사이 ‘취약계층’이 꿈꾸는 미래

이 글은 2026년 8월 네팔 라수와-기룽 홍수를 기후, 개발, 행정, 사회관계가 얽힌 복합재난으로 분석한다. 기후변화와 지진, 빙하 후퇴 등이 붕괴에 미친 영향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위험 지역에 집중된 기반시설 개발과 미흡한 안전·경보 체계가 피해를 키웠다고 짚는다. 임차인과 비공식 노동자, 실종자 가족 등 공식적인 피해 증명에서 배제되는 이들의 사례를 통해 취약성이 행정, 시장, 노동, 기반시설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회복은 시설 복구에 그치지 않고 피해 당사자들이 지키고 싶은 삶과 관계를 함께 정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오영훈(경북대학교)
라수와-기롱 홍수 발생 다음 날, 네팔 누와코트 지역 한 마을의 생존자들이 언덕 위에서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
출처: 게티이미지(Sanjit Pariyar)

 

2026년 8월 26일, 네팔과 중국 국경에 솟은 랑탕리룽 산(7,234m) 북사면에서 거대한 암반이 무너졌다. 붕괴는 빙하 얼음과 뒤섞인 빙암사태로 변했고, 이어 물과 토사, 암석을 실은 돌발홍수가 되어 남쪽 보테코시-트리슐리 수계를 따라 150km 이상 흘러내렸다. 9월 26일까지 네팔에서 1,453명이 사망하고 5,285명이 실종된 것으로 집계됐다. 중국 티베트 자치구에서도 43명이 숨지고 519명이 실종된 것으로 보고됐다. 세계은행은 건축물과 기반시설의 직접 피해액을 16억 6천만 달러(2조 2천억 원)로 추산했고, 네팔 정부는 재건 필요액을 47억 8천만 달러(6조 4천억 원)로 추산했다. 특히 강을 따라 건설 중이던 대규모 수력발전소들이 파괴되고 실종된 관련 노동자만 6백여 명에 달했다.

이러한 수치는 재난의 규모를 보여주지만, 대체 재난이란 무엇인지 그 의미를 모두 드러내지는 않는다. 산에서 시작된 홍수가 누구의 죽음과 실종, 실업과 부채, 이주와 단절로 이어지는지를 물리적 작용만으로는 설명해 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대규모 피해가 발생하려면 자연의 힘과 인간의 관계가 특수한 지점에서 만나야 한다. 인류학의 관점은 그런 만남을 총체적으로 살펴봄으로써 통찰을 줄 수 있다.

이 복합재난에 대해 세계기상특성(WWA) 연구진은 2015년 네팔에 닥친 대지진으로 인한 암반 불안정화, 빙하 후퇴와 영구동토층 해빙, 균열 속 융빙수, 최근의 비정상적으로 높은 기온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최근 몬순기와 후몬순기의 영하선 고도가 10년마다 약 100m씩 상승하는 경향도 확인됐다. 그러나 연구진은 이 각각의 조건이 2026년의 붕괴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아직 확정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과학은 암반과 얼음, 물이 어떻게 움직였는가를 설명한다. 사회는 그 지식을 토대로 누가 무엇을 했어야 하고,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결정한다. 붕괴 원인에 대한 책임, 위험을 감시하고 인명을 보호할 의무, 재난 이후의 생활을 지원할 의무는 서로 연관되지만 동일하지는 않다. 붕괴를 막을 수 없었다고 해서 모든 구역에서 경보와 대피가 불가능했던 것은 아니며, 과실이 확정되지 않았다고 해서 국가와 기업의 구호·보상 의무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상반되는 것처럼 들리는 “네팔이 일으키지 않은 기후재난”과 “피해를 키운 네팔의 개발정책”이라는 네팔 내외 담론장의 언사들은 양자택일의 관계에 있지 않다. 세계 온실가스 배출에 거의 기여하지 않은 국가가 막대한 기후 손실을 감당하는 것은 부당하다. 그러나 배상을 논의하려면 감정적 호소에 그쳐서는 안 된다. 기후변화가 암반 붕괴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는지, 피해 규모와 복구 비용은 얼마인지 등을 신뢰할 만한 근거와 함께 제시해야 한다. 발렌드라 샤 총리는 9월 24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이 재난을 ‘히말라야 쓰나미’라고 칭해 전 세계적 공감을 얻기는 했으나, 정작 이 재난의 명칭을 제정하는 특별 위원회에서는 과학적 본질에 맞지 않는다며 이 이름을 후보에서 제외하였다. 공감을 얻어내는 일과 기후재난임을 입증하는 일은 별개의 과정이다. 2026년 10월 초 현재까지는 네팔에 본부를 둔 국제통합산악개발센터(ICIMOD)가 제안한 발생 지점을 강조한 명칭 ‘라수와-기롱(Rasuwa-Gyirong) 홍수’가 일반적으로 쓰인다.

피해 단위를 ‘국가’에서 ‘개인’으로 좁히면 다른 층위의 문제가 전면에 부상한다. 위험한 계곡에 도로·수력발전소·송전망과 국경 교역시설을 집중적으로 조성한 개발 방식과 설계 기준, 사업장 안전관리, 경보 전달 체계에 대해 네팔 정부와 (한국의 한국남동발전, 두산에너빌리티, 계룡건설산업을 포함한) 참여 기업의 책임을 따져 물어야 한다. 국내의 행정·산업 실패와 국제적 불평등을 각각 지목하고 책임을 묻되, 복구와 회복을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회복 정책은 흔히 산간 주민, 만성 질환자, 임산부, 독거노인, 빈곤층, 동반자 없는 아동 등을 ‘취약계층’으로 분류한다. 긴급한 자원을 우선 배분하려면 필요한 분류 체계다. 그러나 취약성을 인간의 특정 측면과 결부된 속성처럼 취급하는 순간, 그들이 어떤 이유로 위험에 노출되게 되었고 어떤 제도가 그들의 선택지를 지금도 제한하고 있는지는 배경으로 밀려난다.

‘관계적 취약성’ 개념은 취약성을 양산하지만 후경화된 관료행정, 시장, 통치, 개발결정을 들여다보는 방법론이다. 취약성은 개인이나 집단에 고정된 결핍이 아니라 국가, 시장, 토지, 노동, 행정문서, 기반시설 사이에서 개인과 집단이 맺는 관계를 통치 가능한 형태로 재편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같은 홍수라도 토지 소유자는 재산 피해를 입고, 임차인은 보증금을 잃으며, 일용노동자는 당장의 소득을 잃는다. 수력발전소 노동자의 실종은 피해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가족에게 소득 중단과 부채의 형태로 도달한다. 피해의 지리적 경계와 생활 파괴의 경계는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국제노동기구는 침수 범위 4km 안에 약 2만 1,400명의 노동자가 거주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그러나 도로·전력·국경무역의 단절로 인해 그보다 훨씬 많은 관광 가이드, 짐꾼, 운송업자, 농민, 식당 종사자, 영세사업자의 소득에 연쇄적인 영향이 전해진다. 비공식 고용이 많은 네팔에서는 하루의 영업 중단이 곧바로 생계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피해자’란 누구인가. 집이 무너진 사람, 가족이 실종된 사람, 일터를 잃은 이주노동자, 통학로가 끊긴 학생일까? 관료 시스템은 이 질문에 주민명부와 조사표로 답하곤 했다. 세계은행은 재난 지원을 위해 네팔의 통합사회등록부를 신속 지급 체계와 연결할 것을 제안했다. 주소, 가족관계, 피해 사진, 주택 소유, 유력인의 추천서, 기타 보유한 자원 여부로 지원 신청 자격이 결정된다. 중복 지급을 막고 한정된 자원 배분을 위해 필요한 작업이다. 하지만 실제 피해보다 증명 가능한 피해를 우선하게 될 수 있고 실제로 그런 일이 보고되고 있다. 구두계약 노동자, 주소 이전 없이 이주한 노동자, 임차인, 실종자의 소득에 의존하던 가족이 입은 피해는, 제도의 그물망을 비켜 가는 피해가 될 수 있다. 회복의 불평등은 구호품을 나누는 마지막 단계에서만 발생하지 않는다. 무엇을 손실로 인정하고, 누가 신청할 수 있으며, 어떤 증거를 유효하다고 판단하는지에서 이미 시작된다.

재난은 또한 서로 다른 시간성 사이의 충돌이기도 하다. 정부와 기업에는 도로·발전소 복구가 우선이다. 농민에게는 파종과 수확의 계절이, 상인에게는 대출 상환일이 있다. 실종자 가족에게는 사망을 인정하기 어려운 기다림의 세월이, 아이들에게는 되돌릴 수 없는 학기가 지나간다. 교량이 다시 놓이고 전력이 공급되었다고 해서 이 시간성이 함께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건물이 남아 있어도 교사, 학생, 통학로, 돌봄이 사라지면 학교는 기능하지 못한다.

회복의 원칙과 지향이 될 ‘더 나은 미래’라는 말도 자명하지 않다. 안전한 곳으로의 이주는 생명을 보호하겠지만, 그 장소가 생계, 친족관계, 종교생활을 어렵게 한다면 이주는 끝나지 않은 재난일 수 있다.

네팔 대홍수를 인류학적으로 본다는 것은 결국 재난의 경계를 다시 그리는 일이다. 그 경계는 홍수가 지나간 강변보다 넓고, 피해자 명부보다 복잡하며, 복구사업의 종료일보다 오래 지속된다. 재난은 산사면이 무너진 순간에만 발생하지 않는다. 위험을 특정 지역과 사람에게 집중시키는 개발 과정에서 형성되고, 어떤 손실은 인정하고 다른 손실은 보이지 않게 만드는 행정 절차에서 지속되며, 주민이 원하지 않는 미래를 ‘정상화’라는 이름으로 부과할 때 재생산된다.

그러므로 “누구의 책임인가”라는 질문에는 하나의 이름만 들어갈 수 없다. 고탄소 발전의 이익을 누려 온 국제사회의 기후 책임, 산악지형에 기반시설을 배치하고 관리한 국가와 기업의 보호 의무, 국경을 넘어 정보를 전달할 기관의 책임, 그리고 피해자의 생활을 다시 가능하게 할 공적 지원 의무가 서로 다른 층위에서 함께 존재한다. 책임을 나눈다는 것은 책임을 희석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원인과 보호, 보상과 재건의 각 단계에서 누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더 정확하게 밝히는 일이다.

재난 이후 가장 정치적인 질문은 결국 “무엇으로 돌아갈 것인가”이다. 재난 이전의 불안정한 노동과 위험한 주거로 되돌아가는 것이 회복일 수는 없다. 외부 전문가가 그리는 표준화된 미래는 종종 주민보다는 통치 주체의 관점을 반영한다. 진정한 회복은 파괴된 것을 다시 세우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어떤 삶과 관계와 미래가 보호받을 가치가 있는지를 피해 당사자와 함께 다시 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저자 소개

오영훈(young50@knu.ac.kr)

현) 경북대학교 고고인류학과 BK교육연구팀 계약교수

<주요 저술>

『셰르파, 히말라야 등반가: 인류학으로 읽는 셰르파 이야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2021).

“Enclosure of a Mountain Hut Commons: Community Stewardship and the Closure of Baekwoon Sanjang in South Korea.” Journal of Alpine Research. 2026.

“Mobility from Ill-Being to Wellbeing: How to Break Off a Fight between a Sherpa Father and Son.” Mobilities of Wellbeing: Migration, the State and Medical Knowledge (Anne Sigfrid Grønseth and Jonathan Skinner, eds.), (Carolina Academic Press, 2021).

“종족성의 일상적 실천: 히말라야 등반과 네팔 셰르파 종족집단의 사례.” 『남아시아연구』 29(3), 2023.

“Dying Differently: Sherpa and Korean Mountaineers on Everest.” Minnesota Review 2018(90), 2018.

관련 자료

관련자료

Faas, A. J. (2024). “On (Not) Seeing Like a State: On (Not) Seeing Like a State: Ethnography and Intertextuality on the Way to Practice.” Journal of Disaster Studies 1(1), 91-102.

Haines, Dan (2026). “Nepal Cannot Stop the Floods. It Can Stop Them From Becoming Disasters.” TIME, September 15.

Marino, Elizabeth K. and A. J. Faas (2020). “Is Vulnerability an Outdated Concept? After Subjects and Spaces.” Annals of Anthropological Practice 44(1), 33-46.

Tharoor, Ishaan (2026). “The Floods Nepal Didn’t Cause.” The New Yorker. August 29.

World Weather Attribution (2026). “Rapid Warming in the Himalaya Exacerbates Geohazard Cascades Beyond Adaptation Limits.” (accessed 2026, Oct. 7)

https://www.worldweatherattributio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