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세계는 계속될 것인가? 2026년 FIFA 월드컵의 정치학

1984년과 1994년, 미국이 개최한 두 번의 스포츠 메가 이벤트는 ‘거부할 수 없는 제국’ 미국의 지위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2026년 개최되는 FIFA 월드컵은 미국 헤게모니의 균열을 배경으로 기획되었고, 여러 국가들의 관중과 스태프들의 입국을 불허하며 논란 속에서 개최되고 있다. 국경을 넘어선 자본과 사람의 이동을 지지하고 또 보장해왔던 미국이 보여주는 폐쇄성은 분명 미국이 이전과는 달라졌음을 암시하고 있다. 2026 FIFA 월드컵은 축구라는 스포츠의 축제이지만, 동시에 미국의 지속적인 세계적 영향력을 입증할지 아니면 미국 헤게모니의 균열을 드러낼지를 가늠하는 무대가 되고 있다.

박해남(계명대학교)
2026년 6월 21일, 벨기에와 이란 축구팀이 2026 FIFA 월드컵 경기를 치르고 있다. 출처: Teherangeles (Wikicommons)

 

  1. 미국과 소프트 파워

소프트 파워(Soft Power). 정치학자 조지프 나이(Joseph Nye)가 만든 이 개념은, 여러 도시들과 국가들이 왜 올림픽이나 FIFA 월드컵 같은 스포츠 메가이벤트를 개최하고자 하는지를 설명해주는 키워드가 되었다. 인류의 절반 이상이 시청하는 스포츠 메가이벤트는 전 세계에 도시와 국가가 지닌 문화적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와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메가이벤트를 통해 국제사회에 국가의 면모를 새롭게 알리려는 시도들은 훨씬 전부터 존재해왔다. 파시스트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경기장, 그리고 강인한 선수들을 통해 이탈리아의 이미지를 쇄신하고자 무솔리니가 주도했던 1934년 이탈리아 월드컵과, 1차 대전의 패전을 딛고 새로운 세계의 패권이 되고자 했던 독일과 알베르트 슈페어의 설계 하에 바뀌어가던 제3제국의 수도 베를린을 선전하고자 했던 히틀러의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전 세계에 산재한 군사 기지와 주기적인 군사 개입을 통해 세계의 경찰로 자리매김하고, UN을 포함한 국제기구를 통해 전 세계의 질서를 좌우하며, 음악과 영화 등 문화 상품으로 전 세계를 석권하고, 전 세계가 그 생활 양식을 선망하던, ‘거부할 수 없는 제국(irresistible empire)’인 미국도 그런 메가이벤트가 필요할까?

  1. 미국과 축구

오랜 시간 동안 미국은 ‘아니오’라고 답했다. 1950년대부터 우방인 호주, 캐나다, 멕시코, 그리고 추축국에서 동맹으로 변신한 일본, 서독, 이탈리아가 올림픽을 개최하는 동안 미국은 적극적으로 올림픽을 개최하고자 하지 않았다. 그래도 최소 수십 명의 미국 선수들이 늘 포디움 꼭대기에서 성조기를 바라보았고, 미국인 관중들은 자유롭게 갓 블레스 아메리카를 불렀다. ‘84 LA 올림픽은 소련이 주도한 보이콧으로 얼룩졌지만, 남다른 방송 기술과 마케팅으로 미국은 글로벌 자본주의의 선두주자임을 증명했다. 이후 CNN 설립자 테드 터너는 미국 프로농구(NBA)가 전 세계 안방에서 방영되도록 헸고, 나이키는 마이클 조던의 운동화가 전 세계의 신발장에 놓이도록 헸다.

20세기 미국이 거부할 수 없는 제국이었다면, 축구는 거부할 수 없는 스포츠였다. 처음에는 미국도 축구를 거부했다. 매 경기 수십 차례 광고가 가능했던 미식축구, 야구, 농구와 달리 경기 중반을 제외하고는 광고가 불가능한 것이 축구였다. 미디어의 외면 속에서 1968년 출범한 프로 축구리그는 1984년에 자취를 감춘다. 다만, 중산층을 중심으로 한 축구클럽의 활성화라는 씨앗을 미국에 남겨놓았을 뿐이다.

이윽고 미국은 축구의 세계 속으로 편입된다. 참가국과 경기 수를 늘려 수익을 상승시키려던 FIFA에게 미국은 비유럽에서 가장 좋은 개최지였다. 거대한 규모의 미식축구 경기장들은 약간의 수리 후 축구 경기장이 될 수 있었고, 1994년 미국 월드컵은 현재 시점까지도 가장 많은 관중이 입장한 대회로 남아있다. 1996년에는 미국 프로 축구리그(MLS)가 새로이 시작되었고, 빌 클린턴의 재선으로 끝난 ’96 대통령 선거는 ‘사커맘(Soccer mom)’이라는 단어를 널리 퍼뜨렸다. 미국이 전 세계 여자축구를 선도하는 국가로 자리매김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1. FIFA 월드컵의 글로벌 정치

2001년 9월 11일. 뉴욕의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졌다. 전 세계가 앞다투어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테러를 규탄했다. 이란이나 북한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후 미국이 수행한 ‘테러와의 전쟁’은, 소수의 테러세력을 제외한 어떤 공식적 정부도 미국과 대적할 수 없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말한 ‘역사의 종언’이 눈앞에 도래한 것 같았다.

바로 그때 저항이 시작되었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자 전 세계적인 반미 여론이 들끓었다. 중동에서는 물론 유럽에서도 미국의 일방주의를 비판하는 목소리들이 등장했다. 남미에서는 베네수엘라를 필두로 반미 정부가 들어섰다. 서울에서는 미군과 미국을 비판하는 목소리와 촛불들이 여러 차례 시청 광장을 매웠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는 눈앞에 있는 것 같았던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가 신기루(mirage)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런 상황에서 2009년 시작된 FIFA 월드컵 개최 프로젝트는 이내 정치와 결합한다. 전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 뉴욕 시장 마이클 블룸버그, 캘리포니아 주지사 아놀드 슈워제네거, 그리고 전 대통령 빌 클린턴이 유치위원회에 참여했다. 2022년을 목표로 한 진지한 노력에 전문가들은 미국을 개최지로 예상했다. 그러나 2010년 12월 2일 결정된 개최지는 카타르였다.

FIFA 월드컵이 스포츠를 넘어선다는 사실은 이때 드러났다. 개최지 결정 이후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국세청 범죄수사국(IRS-CI)은 국제축구연맹, 남미축구연맹, 북중미축구연맹 임원진의 비리를 수사했고, 2015년 미 법무부는 제프 블래터 FIFA 회장 등 십수 명을 기소했다. 2018년, 2026년 대회 개최지는 미국, 캐나다, 멕시코로 결정되었다. 총 104경기 중 78경기가 미국에서 개최되고, 캐나다와 멕시코는 각 13경기가 열린다. 실질적으로는 미국 월드컵이다.

  1. 논란 속의 게임

1994년 FIFA 월드컵 후 미국과 세계는 한 걸음 가까워졌다. 미국은 세계의 스포츠인 축구를 받아들였고, 세계는 미국이 주도하는 지구화를 목도했다. 32년이 지났다. 그 거대한 규모의 경기장들은 미국의 도시들이 세계의 메트로폴리스임을 보여줄 수 있을까?

축구에 별다른 관심이 없다는 점이 거의 유일한 논란이었던 1994년과 달리, 2026년 FIFA 월드컵은 다양한 논란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미 2017년의 시점에서 FIFA는 미국 정부에게 참가국 선수단과 스태프, 관중의 자유로운 출입국 보장을 요구했다. 당시 대통령 트럼프는 이를 공개적으로 약속했다. 하지만 이 약속은 현실이 되지 못했다.

2025년 6월, 트럼프 행정부는 39개 국가에 대한 비자 발급을 중단했다. 이 중에는 이란, 코트디부아르, 세네갈, 아이티 같은 월드컵 참가국도 있었다. 정부는 선수와 스태프, 그리고 가족에게만 예외를 허용했을 뿐, 관중의 입국은 불허했다. 2026년 초 미네소타에서 있었던 ICE의 이민 단속 역시 미국이 전 세계의 축제를 개최할 수 있는가라는 우려로 이어졌다. 2025년 12월, FIFA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평화상을 수여했다. 불과 한 달 후, 트럼프는 그린란드를 미국의 영토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유럽에서는 미국에서 열릴 월드컵을 보이콧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거대한 수익을 기대하고 있는 FIFA는 이를 겨우 틀어막았다.

논란의 중심에는 이란이 있다. 미국이 이란과 전쟁을 시작하며 이란이 과연 참가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전 세계를 사로잡았다. 미 당국은 경기 48시간 이전에만 이란 선수들이 미국에 입국할 수 있도록 했으며, 이란 선수단은 LA와 시애틀에서 경기를 함에도 멕시코 티후아나에 캠프를 차렸다. 십수 명의 지원 스태프는 결국 미국 땅을 밟지 못한 채 고국으로 돌아갔다. 이라크 대표 선수, 소말리아 심판, 팔레스타인 축구협회장 또한 입국 불허 및 공항 억류를 경험했으며, 카보베르데 대표팀 골키퍼의 어머니는 미국 정치인들이 나서 비자를 발급을 독려한 끝에 겨우 미국에 입국할 수 있었다.

  1. 미국의 세계는 계속될 것인가

2015년부터 확산된 스포츠워싱(Sportswashing)은 권위주의 국가가 국제사회 내 이미지 변신을 위해 스포츠 메가이벤트를 개최하는 정황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2014년 올림픽과 2018년 FIFA 월드컵을 개최한 러시아, 2022년 FIFA 월드컵을 개최한 카타르, 2034년 FIFA 월드컵이 예정되어 있는 사우디 등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실제로 이 대회들을 전후하여 인권문제를 포함한 다양한 논란이 제기되었다. 반면에, 자유롭고 민주적인 국가에서의 스포츠 메가이벤트들은 그런 논란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었다.

2026년 FIFA 월드컵은 논란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1994년 월드컵과 자못 다른 풍경을 보며 더 이상 미국은 거부할 수 없는 제국이 아니라 할 수 있을까? 아니면 1984년과 같이 남다른 기술력과 마케팅으로 글로벌 자본주의의 새로운 국면을 연출할 것인가? FIFA 월드컵은 과연 미국의 세계가 계속될 것인가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저자 소개

박해남 (parkhn@kmu.ac.kr)

현) 계명대학교 사회학과 조교수

전)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HK+연구교수, 도쿄대학 사회과학연구소 객원연구원

<주요 저술>

『1988 서울, 극장도시의 탄생』 (휴머니스트, 2025).

“동북아시아 메가이벤트와 지역 (불)균형 발전: ’70 일본만국박람회와 ’93 대전세계박람회를 중심으로.” 『지역사회연구』 30(1), 2022.

“Nationalism and the Representation of National Sport Heroes in 1990s South Korea.” (Park et al.), Journal of Asian Sociology 50(3). 2021.

관련 자료

Beissel, Adam S. and Geoffery Z. Kohe (2020). “United as One: The 2026 FIFA Men’s World Cup Hosting Vision and the Symbolic Politics of Legacy.” Managing Sport and Leisure 27(6), 593-613.

Berg, Adam and David Kilpatrick (2026). “Should soccer federations boycott the 2026 FIFA Men’s World Cup?: a disputation.” Sport, Ethics and Philosophy 20(2), 230–248.

Burns, Adam (2026). “The 2026 FIFA World Cup has become another arena for Trump’s political theatre.” LSE Blogs.

https://blogs.lse.ac.uk (accessed Jun. 22. 2026)

Crossley, Stephen (2026). “The (un)politics of ‘sportswashing’: what’s the problem?” International Journal of Sport Policy and Politics (Advanced online publication), 1-20.

Frías, Francisco Javier Lopez (2026). “Soccer’s darkness and lights: the 2026 FIFA Men’s World Cup amid global politics and organizational interests.” Sport, Ethics and Philosophy 20(2), 209–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