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전쟁과 동남아시아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이 호르무즈 해협의 사실상 봉쇄로 이어지면서 동남아시아 전역은 에너지와 경제가 결합된 복합 충격에 직면했다. 각국의 대응은 이슬람 연대, 경제적 취약성, 대미 의존도에 따라 상이하게 분화되었다. 아세안의 대응은 결국 호르무즈 해협 통항 안전이라는 경제·해상 의제로 수렴되었다. 특히 경제적으로 가장 취약한 국가일수록 규범적 발언에 소극적이었다는 역설은 아세안 집단 대응의 한계를 드러낸다. 이번 위기가 역내 에너지 다변화와 제도 개혁의 계기로 이어질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형종(아시아연구소)
베트남의 한 주유소에서 사람들이 주유를 위해 대기하고 있다. 출처: Duy Nod(Pixels)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은 호르무즈 해협의 사실상 봉쇄로 이어지며 동남아시아 전역에 즉각적인 에너지·경제·인도주의적 복합 충격을 가했다. 에너지 가격 인상, 인플레이션 압력, 식량위기 우려 등 국가적 위기의 정도와 대응의 양상은 국가별로 상이한 수준을 보였다. 외교적 대응 또한 이슬람 연대·경제적 취약성·대미 의존도에 따라 강경 규탄에서 위험 최소화 외교까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은 아세안을 통한 지역 차원의 공동 대응이 지닌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드러냈다.

 

이란 전쟁의 동남아시아 국가별 영향과 대응

말레이시아는 외교부 공식 성명을 통해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을 “강력 규탄(strongly condemns)”했다. 이러한 강경 대응은 말레이 무슬림이 다수인 국내 정치적 요인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말레이시아는 외형상 에너지 수출국이지만 정제유 수입 의존과 전략 비축 부족으로 인해 실질적으로는 준수입국형 취약성을 갖기에 에너지, 경제적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에너지 보조금 유지를 위해 연방 운영 지출을 삭감했으며, 비료, 사료 가격 상승이 식량 가격 인상 요인으로 작동하는 연쇄적 위기가 가사화되었다. 동시에 호르무즈 해협 통과 협상과 양자 네트워크를 활용해 에너지 공급 실리를 추구했다.

인도네시아는 외교적 수사와 실질 행동에서 괴리가 나타났다. 세계 최대의 무슬림 인구를 보유한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이슬람 연대보다 중재자 정체성을 우선시했다. ‘평화 이사회(Board of Peace)’ 가입과 전쟁 중재 역할 자임을 시도했으나 실현되지 못했다. 에너지 보조금 유지를 위해 추가로 약 90억 달러의 예산이 필요했으며 이는 정부 재정 운영의 상당한 부담으로 이어졌다. 연료 가격을 동결했으나 재정 압박이 외교적 유연성을 구조적으로 제약했다. 미국과의 무역협정 활용을 시사하는 등 중재 외교와 대미 관계 관리를 병행했다.

싱가포르는 상대적으로 제한된 위기에 노출되었으며 원칙에 기반한 외교적 균형을 유지하고자 했다. LNG 공급선 다변화, 장기 계약, 전략 비축 체계를 이미 구축한 상태에서 충격을 상대적으로 효과적으로 흡수했다. 정부는 이란의 호르무즈 통제에 대응하여 선박 통행을 위한 별도 협상이나 통행료 지불에 참여하는 것은 국제법상 항행의 자유 원칙에 반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를 강력히 비판하고 대러 제재에 동참했던 싱가포르가 이란 전쟁에서 상대적 절제를 보인 것은 미국과의 안보 협력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란 전쟁을 계기로 기존에 진행되던 원자력 도입 가능성 검토에 에너지 안보 측면의 추가 동력을 제공했다.

태국은 아세안 내 GDP 대비 석유 수입 비중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로 성장률 1% 이하 가능성이 제기되었고, 비료 가격 상승으로 쌀 파종 포기 가능성이 나타나는 등 농업 전반의 충격이 컸다. 미국이 경제적 지원을 제공하지 않자 중국과 러시아에 지원을 모색했다. 필리핀은 수입 원유의 98%를 중동에 의존하는 구조로 인해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아세안 의장국으로서 미국과의 안보관계를 유지하며 중국과 새로운 협력을 모색하는 경제와 안보 분리라는 실용적 행보를 보였다. 정제유의 97%를 태국에 의존하는 라오스는 경유 가격이 6주 만에 163% 이상 폭등하고 주유소 절반이 폐쇄되었다. 태양광 등 에너지 다변화를 모색했다. 캄보디아도 연료 가격이 30% 이상 급등으로 의류 산업 등이 직접 타격을 받았으며, 비공식 노동자 약 500만 명이 직접 영향권에 놓였다. 외교는 최대한 신중한 위험 최소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베트남은 주변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충격이 제한적이었다. 중동 수출 비중이 낮고 식량 자급 구조를 갖춘 데다, 원유와 가스 생산 능력도 에너지 위기 충격을 흡수하는 데 기여했다. 특정 LNG 발전소 계획을 재검토하는 동시에 원자력 발전 도입 논의를 재가동하는 등 에너지 정책 전환의 계기로 적극 활용했다. 외교적으로도 절제된 균형 입장을 유지했다.

미얀마는 군부 쿠데타 이후 내전과 외교적 고립 속에서 경제적 위기도 심화되었다. 디젤 부족이 쌀 수확에 영향을 주어 식량 위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군부 정권은 계엄령을 확대하는 한편 에너지 배분을 군사 논리로 운용했으며, 아세안의 집단적 대응 채널에서 사실상 배제된 상태였고, 국가 차원의 대응도 제한적이었다.

 

아세안의 제도적 대응: 채널 분화와 의제 이동

아세안은 이란 전쟁 발발 직후 공격 개시국을 명시하는 이례적인 외교장관 공동 성명을 채택했다. 이후 외교장관 회의는 거듭된 합의 실패로 의장 성명에 머물렀다. 반면, 별도로 열린 경제장관회의는 전쟁을 ‘지정학적 정세변화’(geopolitical development)로 언급하고 회복력을 전면화하는 공동 성명을 채택했다. 이러한 흐름은 5월 8일 필리핀에서 개최된 제48차 아세안 정상회의 성명에서도 이어졌다. 최종적으로 아세안의 대응은 ‘차별적, 일방적 조치’에 대한 우려와 호르무즈 해협 통항 안전이라는 경제, 해상 의제로 수렴되었다. 역설적으로 경제적으로 가장 취약한 라오스, 캄보디아, 필리핀이 오히려 규범적 발언에 가장 소극적이었다. 이는 아세안 집단 대응이 에너지 안보와 해상 통항 안전이라는 공통 이해관계의 범위 안에서 형성되었음을 보여준다.

전망

이란 전쟁의 여진 속에서 동남아 국가들의 구조적 과제는 미해결 상태다. 단기적으로 에너지 공급망 다변화 압력이 커지고, 각국은 물가 상승 등 부정적인 경제 영향을 최소화하는데 집중할 전망이다. 역내 다수 국가에서 원전이 에너지 안보 기반 기술로 재등장하고 있으며, 인도네시아 각료의 말라카 해협 통행료 관련 돌발 발언과 즉각적인 정부 철회는 호르무즈 사태가 주요 해협의 법적 지위를 둘러싼 논쟁으로 확산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보다 근본적 질문은 역외 강대국 간 군사적 충돌에서 아세안 중심성이 어디까지 작동할 수 있는가이다. 이번 위기에서 아세안이 실질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던 대상은 분쟁 자체가 아니라 분쟁이 초래한 경제적 파급효과였다. 5월 8일 제48차 아세안 정상회의는 에너지 안보·식량·금융·무역 등 6개 우선 과제를 명시하고 APSA(아세안 석유 안보 협정) 비준을 촉구했다. 그러나 이를 이행할 재정적·제도적 기반이 충분한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이번 위기는 아세안의 역외 분쟁의 경제적 영향은 일정 부분 관리할 수 있지만, 분쟁 자체에 대한 규범적 판단을 지속하기는 어렵다는 구조적 한계를 다시 확인시켜주었다.

저자 소개

김형종 (kimsea@snu.ac.kr)

현)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HK교수, 아시아연구소 동남아센터장

<주요 저술>

“아세안 2023: 다양성과 분열.” 『동남아시아연구』 34(1), 2024.

“전환기 국제질서와 아세안 중립성: 한반도 평화에 대한 시사점.” 『아시아연구』 26(3), 2023.

관련 자료

관련자료

ASEAN Foreign Ministers (2026). “ASEAN Foreign Ministers’ Statement on the Situation in the Middle East.”

ASEAN Leaders (2026). “ASEAN Leaders’ Statement on the Response to the Middle East Crisis.”

IEA (2026). “The Middle East and Global Energy Markets.” IEA Topics, April 23.

Nellor, David (2026). “The Iran War Widens Indonesia’s Fiscal Faultlines.” East Asia Forum, April 16.

Souvannasane, Thongsavanh (2026). “Iran-US-Israel Ceasefire Offers Laos Fuel Relief After Six Weeks of Crisis.” Laotian Times, April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