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온라인 매거진

The Earliest Introduction of Iron into the Yŏngnam Region -A Critical Examination of the Evidence and Discourse-

이 글은 낙랑군 이전에도 영남에서 철기가 쓰였을 가능성을 검토한다. 철기의 이동을 유민 집단과 사회 변화와 연결해 설명하면서, 고대 동아시아 물질문화 연구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The Earliest Introduction of Iron into the Yŏngnam Region A Critical Examination of the Evidence and Discourse

저자: 고일홍(아시아연구소 HK교수)

International Journal of Korean History Vol 30, No. 1.

고창 죽림리 채석장은 왜 세계유산으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가?

본 연구에서는 한반도 영남지역으로의 최초의 철기 유입에 관한 증거와 담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였다. 영남지역으로 철기가 유입된 시점은 한국 원사-역사시대 고고학의 핵심 주제이며,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많은 주제이기도 하다. 최근에 새로운 고고학 자료가 발견되면서, 기원전 108년 낙랑군 설치 이전에 이미 영남지역에서 철기가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강력하게 제기되었다. 그러나 낙랑군 설치 이전에 어떻게 철기가 영남지역으로 유입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정치하지 않아, 이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여전히 존재한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낙랑군 설치 이전에 영남지역으로 철기가 유입되었을 가능성’을 두 가지 측면에서 검토하였다. 첫째, 영남지역의 가장 이른 철기 유물을 기원전 2세기 중엽으로 비정하는 근거에 대해 비판적으로 살펴보았다. 둘째, 낙랑군 설치 이전에 철기가 영남지역으로 유입될 수 있었던 메커니즘에 대해 비판적으로 살펴보았다. 우선, 가장 이른 철기 유물의 편년이 주로 한경(漢鏡)의 매납 연대에 의존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영남지역 한경의 매납 연대가 여전히 논쟁의 대상인 만큼, 현재의 철기 편년안이 ‘사상누각’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경고하였다. 이어서, 영남 지역에 철기가 ‘낙랑군 설치 이전’에 유입되었다고 주장한 연구자들이 그동안 제시해온 다양한 설명 모델을 살펴보았다. 특히 최근 연구들이 철기의 전달 메커니즘으로 ‘이주’, 특히 ‘유민 이동’을 보다 신중하게 수용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당시 동아시아의 사회・정치적 변동과 연관시켜 이러한 유민의 이동을 다룸으로써, 유민 집단이 영남지역으로 철기를 처음으로 확산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을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마지막으로, 한국 고고학계에서 이주 개념이 일제강점기 식민주의적 담론과의 연관성 때문에 오랫동안 회피되어 온 학문사적 맥락도 짚어보았다. 본 논문에서는 궁극적으로 영남지역으로의 가장 이른 단계의 철기 유입에 대한 보다 정교한 분석틀을 제시하고, 고고학자와 역사학자 간의 학제간 연구를 촉진하고, 고대 동아시아에서의 인구와 물질문화의 이동에 대한 후속 고고학 및 역사학 연구의 필요성을 환기시키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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