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건 개요와 초기 반응
2025년 3월 19일, 튀르키예 정치의 중심지인 이스탄불에서 시민들이 대규모로 거리로 나와 집회를 벌였다. 이는 에크렘 이마모을루(Ekrem Imamoğlu) 이스탄불 시장이 부패 및 테러 지원 혐의로 긴급 체포된 데 이어, 그의 이스탄불 대학교 학사 학위가 취소된 사건에 대한 반응이었다. 튀르키예 현행법상 대통령 선거 출마 자격에는 학사 학위가 요구되므로, 해당 결정은 그의 대선 출마 가능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평가된다. 이에 따라 수많은 시민들이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며 시위에 참여했고, 이스탄불에서만 약 30만 명이 집결한 것으로 추정된다. 내무부 보고에 따르면 약 340명이 구금되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물리적 충돌로 인한 부상도 발생했다. 사건 직후 튀르키예 금융시장에서는 리라화 가치와 주가가 일시적으로 조정을 받는 등 불확실성에 대한 민감한 반응이 나타났다.
사법 절차와 제도적 신뢰에 대한 논의
이마모을루는 최근 지방선거에서 집권 여당인 정의개발당(AKP)의 후보를 두 차례 연속으로 제치며 야권의 대표적 인물로 부상했다. 그는 2028년 대선의 유력 주자로 평가받고 있었으며, 야당 내에서도 상징적인 지도자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학위 취소 결정은 3월 18일 비공개 행정 회의에서 이루어졌으며, 1990년 경영학부로 편입한 졸업생 28명의 학적 오류를 이유로 학위가 무효화되었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절차적 투명성과 일관성 측면에서 보다 명확한 설명과 사전 공지가 필요했다는 비판적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사법 결정에 대한 사회적 반응은 다양하게 나타났다. 일부에서는 하버드 법대 교수 로렌스 트라이브(Laurence Tribe)의 ‘사법의 정치화(Politicization of Judiciary)’라는 개념을 인용하며 사법부의 독립성과 중립성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다. 에르도안 정부는 2016년 쿠데타 이후 사법부 인사 구조에 변화를 도입했으며, 고등법원 판사 중 상당수가 여당과 연계된 인사로 분류된다는 지적도 있다. 이러한 논의는 법치주의의 형식적 요건을 넘어 실질적 신뢰와 제도적 정당성의 중요성을 환기시키며, 사법 기관의 독립성과 시민사회의 감시 기능 간의 균형 필요성을 강조한다.
시민사회와 민주주의의 내적 역량
이마모을루 사태는 단지 한 정치인의 법적 상황을 넘어, 튀르키예 국민이 지향하는 국가의 방향성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된다. 시위대는 “공화국을 지켜라”, “세속주의는 헌법이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아타튀르크가 수립한 세속적 공화국의 가치에 대한 재확인을 시도했다. 최근 몇 년간 튀르키예에서는 종교적 요소가 정책에 반영되는 사례가 증가했으며, 이에 대해 일부 시민들은 국가 정체성의 변화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민주주의, 인권, 세속주의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지면서 다양한 사회적 담론이 형성되고 있다.
한편, 이마모을루에 대한 평가 역시 다양한 시각이 엇갈린다. 그가 공화국민당(CHP) 소속으로 야권을 대표하지만, 중도적 이슬람 성향을 지녔다는 분석도 있다. 또한 포퓰리즘적 정치 행보나 위기 대응 과정에서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예컨대 2023년 동부 지역 지진과 이스탄불 홍수 발생 당시 휴가를 떠났다는 보도는 지지층 내에서도 논란을 일으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을 계기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의견을 표출하고 공공 담론을 형성하는 모습은 튀르키예 시민사회의 민주적 역량이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정권 비판을 넘어 제도에 대한 기대와 책임 의식을 반영하는 움직임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평화적 방식으로 의견을 표현하는 시민들의 태도는 민주주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지표로 작용한다. 이러한 흐름은 향후 튀르키예가 제도적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할 수 있는 내적 역량을 갖추고 있음을 시사하며, 정치적 다양성과 공존의 문화를 확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국제사회의 반응과 외교적 고려
국제사회는 이번 사태에 대해 신중하고 절제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사법의 독립성과 법치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성명을 발표했으며, 유럽평의회는 절차적 투명성 부족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미국은 튀르키예와의 전략적 관계를 고려하면서도, 공식 성명을 통해 사법 절차의 투명성 확보 필요성을 언급했다. 유럽과 미국 모두 적당한 수위에서 표현을 자제하고 있는 것은 튀르키예와의 외교적 관계에 입각한 전략에 근거한다. 예컨대, 튀르키예가 난민 문제, 중동 안보,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서 전략적 요충지로 기능하고 있음을 반영하고 있다.
러시아와 걸프 국가들 역시 보다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에너지 및 경제 협력 확대를 우선시하는 외교적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국제사회의 태도는 튀르키예와의 전략적 파트너십, 경제적 이해관계, 안보적 연대 등을 고려한 실용적 접근으로 해석될 수 있다. 유럽, 미국, 대부분의 아시아권 국가들 모두 튀르키예의 지정학적 중요성과 제도적 안정성에 대한 기대를 유지하면서, 내정에 대한 존중 원칙을 기반으로 점진적인 협력과 조율을 모색하고 있다.
제도 개선과 민주주의의 지속 가능성
이마모을루 사례는 튀르키예가 현재 직면한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법적·제도적 과제와 시민적 요구, 그리고 외교적 선택 사이에서 균형을 모색해야 함을 보여준다. 법적 절차의 정당성, 시민사회의 참여 확대, 국제사회와의 협력적 관계는 모두 튀르키예 민주주의의 지속 가능성과 포용성을 높이는 데 핵심적인 요소다. 향후 튀르키예는 제도와 시민 간의 신뢰를 재정비하고, 상호 존중과 실용적 협력을 기반으로 외교 정책을 추진할 수 있을 때 안정적이고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복합적 노력은 정치권뿐 아니라 학계, 시민사회, 국제사회 모두의 공감과 협력을 통해 실현될 수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아시아연구소나 서울대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자 소개
오은경(euphra33@dongduk.ac.kr)
현) 동덕여자대학교 교양대학교수, 동덕여자대학교 유라시아투르크연구소장.
전) 튀르키예 앙카라대학교 외국인 전임교수, 우즈베키스탄 니자미 사범대학교 교수,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
<주요 저서>
Women in the 20th Century in Turkish and Korean Novels: According to Feminist Critical Perspectives (Urun, 2016).
『이슬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정신분석을 통해 본 이슬람, 전쟁, 테러 그리고 여성)』 (시대의 창, 2015).
『베일 속의 여성 그리고 이슬람』 (시대의 창, 2015).
<최신관련자료>
EEAS Press Team (2025). “Joint Statement by the High Representative Kallas with Commissioner Kos on the recent events concerning Istanbul Mayor Ekrem İmamoğlu.” European External Action Service, March 19.
Guerin, Orla (2025). “Turkey moves to silence jailed Erdogan rival by blocking account on X.” BBC, May 8.
Imamoglu, Ekrem (2025). “I Am the Turkish President’s Main Challenger. I Was Arrested.” The New York Times, March 28.
The Guardian Editorial (2025). “The Guardian view on Turkey’s protests: a rejection of Erdoğan’s autocracy.” The Guardian, March 26.
Ünveren, Burak (2025). “Turkey: Who is Erdogan’s popular rival Ekrem Imamoglu?” DW, March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