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3월 19일, 튀르키예 정치의 중심인 이스탄불에서 시민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분노의 함성을 외쳤다. 에크렘 이마모을루(Ekrem Imamoğlu) 이스탄불 시장이 부패와 테러 지원 혐의로 긴급 체포 및 구금되었고, 그의 이스탄불 대학교 학사 학위가 전격적으로 취소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수천 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온 것이다. 튀르키예 현행법에 따르면 대학 졸업장이 있어야 대통령 선거 출마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에 사실상 그의 대선 출마 자격은 박탈됐다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사법적 농간에 시민들의 분노는 더욱 극으로 치달았다.
이 사건은 단지 개인에 대한 공격이 아니었다. 그것은 튀르키예 민주주의가 직면한 구조적 위기를 선명하게 드러낸 거울이었다. 시민들은 이마모을루에 대한 정치적 억압을 독재적 권력의 연장이라 보고 규탄했으며, 튀르키예 곳곳에서 동시다발적 시위가 벌어졌다. 이스탄불에서만 30만 명 이상이 시위에 참여한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내무부 보고에 따르면 시위 참가자 중 340여 명이 구금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는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부상을 입기도 했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반응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유럽연합은 형식적인 우려 성명을 발표하는 데 그쳤고, 미국은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러시아와 걸프 국가들은 침묵을 유지했으며, 실용주의적 외교 전략이 민주주의 후퇴 앞에서 어떤 한계를 드러내는지를 보여주었다.
정치와 사법의 경계선
이마모을루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집권 여당인 정의개발당(AKP)의 후보를 두 차례 연속으로 꺾으며 에르도안 정권에 실질적 위협을 가한 인물이다. 그는 튀르키예 야당의 상징적 지도자로 부상했으며, 2028년 대선의 유력한 주자로 평가받고 있었다. 특히 이마모을루의 학위 취소는 단 한 차례의 행정 회의 후 비공개로 이뤄졌다. 지난 3월 18일, 1990년 경영학부로 편입한 졸업생 28명의 학적에 명백한 오류가 있다며 졸업‧학위증을 취소했는데, 취소 사유도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절차적 정당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에서 비난을 받고 있다. 그에 대한 구금과 학위 취소는 단순한 행정 조치라 보기 어려운 것이다.
하버드 법대 교수 로렌스 트라이브(Laurence Tribe)는 ‘사법의 정치화(Politicization of Judiciay)’라는 표현으로 사법부의 정치적 편향과 그로 인한 법치주의의 훼손을 비판해왔다. 이는 전형적 사례라 할 수 있다. 법이 중립적 판단 기준이 아니라, 권력 유지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튀르키예의 사법 시스템은 이미 정치적 독립성을 상실한 채, 정적 제거의 도구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국내외에서 제기되고 있다. 에르도안 정부는 2016년 쿠데타 이후 대대적 사법부 인사 개편을 단행했으며, 그 결과 현재 고등법원 판사의 45% 이상이 여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의 저항과 국가 정체성의 균열
이마모을루 사건은 단지 한 정치인의 사법적 운명을 넘어, 튀르키예 국민이 어떤 국가를 원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된다. 시위대는 이스탄불, 앙카라, 이즈미르 등 전국 주요 도시에서 “공화국을 지켜라”, “세속주의는 헌법이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는 단순한 정권 비판이 아니라, 아타튀르크가 수립한 세속적 공화국의 이상에 대한 재확인이라 할 수 있다.
에르도안 정부하에서 튀르키예는 점진적 이슬람화의 길을 걸어왔다. 이슬람 교육의 확대, 여성 복장의 자유 축소, 예술·언론에 대한 검열 강화 등은 모두 아타튀르크가 구축한 세속주의 질서에 반하는 움직임이다. 아타튀르크주의자들과 세속주의 시민층은 이를 ‘국가 정체성의 변질’로 인식하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민주주의와 인권, 세속주의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지면서, 정권의 권위주의적 전환에 대한 반발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물론 이마모을루가 아타튀르크주의를 대변하는 인물이라고 보지 않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마모을루가 주요 야당인 CHP(공화국민당)이기는 하지만 그도 역시 이슬람 중도주의 성향이라는 분석이다. 그리고 포퓰리즘적 정치성향과 리더로서 부적절한 행동을 지적받기도 한다. 이스탄불 시장 직을 역임 중이던 그는 지난 2023년 튀르키예 동부지방에서 지진이 발생해 5만 명에 가까운 인명피해가 발생한 상황에서 스키를 탔고, 같은 해 이스탄불에서 돌발적 폭우와 홍수로 인해 인명피해가 발생했음에도 휴양도시 보드룸(Bodrum)에서 휴가를 즐겼다는 보도로 지지자들의 신뢰를 잃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마모을루는 절대 권력 에르도안 정부에 대항하는 저항의 상징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제사회의 침묵: 지정학과 민주주의라는 이중 잣대
튀르키예의 민주주의 퇴행에 대해 국제사회의 반응도 관심을 끌고 있다. 유럽연합은 이마모을루 사건 직후 성명을 발표해 “사법의 독립성과 법치주의가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실질적인 조치는 없었다. 유럽 평의회는 ‘절차적 투명성 부족’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는 데 그쳤다.
미국은 튀르키예와의 전략적 관계를 중요시했다. 1기 트럼프와 바이든 정부 모두 튀르키예와의 경제 및 군사적 협력에 집중하며, 튀르키예의 민주주의 후퇴에 대해 우려 표명 정도에 그쳤을 뿐 실질적인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이러한 미온적인 태도는 이마모을루 구금 사건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미국 국무부는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라고 밝혔을 뿐이며, 트럼프 대통령은 스트롱맨 에르도안을 치켜세우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이는 튀르키예가 난민 문제,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안보 등에서 전략적 요충지로 기능하고 있기에, 서방이 실질적인 압박을 자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러시아와 걸프 국가들은 한층 더 분명한 침묵을 유지했다. 러시아는 2024년 시리아 문제 및 에너지 협력에서 튀르키예와의 전략적 제휴를 더욱 강화했고,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 등도 경제협력 확대를 우선시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원칙적 가치보다 실용주의 외교를 선택하고 있으며, 이는 튀르키예 시민들의 고립감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거울 속에 비친 권력은 어디로?
에크렘 이마모을루의 구금과 학위 취소, 그리고 이에 대한 시민사회의 집단적 저항은 단순한 정치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권력이 법과 제도를 어떻게 활용해 자신을 정당화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며, 동시에 민주주의가 어떻게 내부로부터 무너질 수 있는지를 경고하는 신호다. 국제사회는 ‘튀르키예의 내부 문제’라는 구실 아래 방관하지만, 그 방관이야말로 권위주의의 확산을 방조하는 행위일 수 있다. 튀르키예 시민들은 거울 속의 권력을 응시하고 있다. 그 거울은 권력을 정당화하지 않으며, 왜곡된 민주주의의 모습을 그대로 반사하고 있다. 이마모을루 사건이 보여준 것은 민주주의가 제도만으로 유지되지 않으며, 시민의 각성과 행동, 국제사회의 연대가 결여될 때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 이 글의 내용은 아시아연구소나 서울대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자 소개
오은경(euphra33@dongduk.ac.kr)
현) 동덕여자대학교 교양대학교수, 동덕여자대학교 유라시아투르크연구소장.
전) 튀르키예 앙카라대학교 외국인 전임교수, 우즈베키스탄 니자미 사범대학교 교수,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
<주요 저서>
Women in the 20th Century in Turkish and Korean Novels: According to Feminist Critical Perspectives (Urun, 2016).
『이슬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정신분석을 통해 본 이슬람, 전쟁, 테러 그리고 여성)』 (시대의 창, 2015).
『베일 속의 여성 그리고 이슬람』 (시대의 창, 2015).
<최신관련자료>
EEAS Press Team (2025). “Joint Statement by the High Representative Kallas with Commissioner Kos on the recent events concerning Istanbul Mayor Ekrem İmamoğlu.” European External Action Service, March 19.
Guerin, Orla (2025). “Turkey moves to silence jailed Erdogan rival by blocking account on X.” BBC, May 8.
Imamoglu, Ekrem (2025). “I Am the Turkish President’s Main Challenger. I Was Arrested.” The New York Times, March 28.
The Guardian Editorial (2025). “The Guardian view on Turkey’s protests: a rejection of Erdoğan’s autocracy.” The Guardian, March 26.
Ünveren, Burak (2025). “Turkey: Who is Erdogan’s popular rival Ekrem Imamoglu?” DW, March 25.